그녀의 음악경력은 우선, 스탠더드 팝과 R&B의 절충을 보여줬던 초기 세 장의 앨범과, 이후에 발매했던 세 장의 영화 사운드트랙, 4집 앨범과 히트 곡 모음집 그리고 앞으로 발매할 앨범까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으나, 2009년 “구보 재발매”와 맞춰 두 단계를 살펴 보자.
Pt. 1: Rising Star, Continuing Her Success (From 1985 To 1991) (조금 구분 되도록!)
화려하게 시작한 휘트니의 음악인생 1부는, '이보다 더 성공적'일 수 없었다. 어떤 가수도 기록하지 못했던 7곡의 연속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및 약 4,200 만장의 전 세계 앨범 판매고. 하지만 1, 2집의 히트 이후 세인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던 그녀에 대한 엇갈린 평가는, 3년간 거둬들인 음악적 성과들에 있어 옥의 티였다.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로 백인취향의 노래만을 부른다.' 라는 찬사와 비난. 물론 앨범에는 소울의 느낌을 담은 곡들이 있었지만, 단적으로 휘트니와 더불어 1980년대 후반을 풍미한 여 가수 아니타 베이커 (Anita Baker) 의 음악보다 덜 검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모든 전략은 그녀의 경력을 지속시키기 위한 측근들의 전술이었기에, 이제 휘트니는 자신만의 음악적 역량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3집인 [I’m Your Baby Tonight] 서 당시의 히트 제조기 였던 엘 에이 리드(L.A Reid)와 베이비페이스의 합작을 선택했고, 전체적으로 좀 더 흑인 음악다운 색채를 앨범에 담아내기에 이른다. 이런 그녀의 노력은 동명 타이틀인 첫 싱글의 차트 1위 및,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R&B 앨범 차트의 정상에 오르는 성과를 낳으며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흑인 계층의 지지를 받는 데 적중했다. 1991년 [수퍼볼] 결승전에서의 애국가 공연에서 보여준 휘트니의 열창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나 랩 음악이 본격적인 조명을 받던 시기인지라 앨범 판매고는 상대적으로 부진하게 보였고, 덩달아 고심 끝에 택한 그녀의 시도마저 평가절하 되는 비운을 맛보게 된다.
Pt. 2: Settling Down The New Heights – A-List Actress, Whitney (From 1992 To 1997) (조금 구분 되도록!)
3집의 월드 투어를 끝내고, 휘트니는 케빈 코스트너와 영화 [보디가드]에 출연하리라는 소식을 발표했다. 휘트니와 그녀의 측근들은 사운드트랙 앨범을 상업적인 최고의 것으로 기획하였고, 그 결과 이 앨범은 “휘트니 휴스턴” 이란 가수를 언급할 때마다 함께 떠오르는 대형 히트 곡들을 배출하였고, 그녀는 실로 엄청난 파장을 음악 및 영화계에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런 성공은 비평가들에게 새로운 비판거리를 제공한 셈이었고, 그녀의 음악성을 성토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즉, 휘트니가 라이브 공연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진정한 본향으로의 회귀”가 레코딩 상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었던 것이다.
결혼과 출산을 통해 인생의 기쁨을 누리던 그녀지만, 혹사로 인해 성대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휘트니는 음악 인생의 적신호를 맞이하였다. 아울러 영화계에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두 번째 영화 [사랑을 기다리며(Waiting To Exhale)]의 사운드트랙에는 불참을 선언하기도. 하지만 레코드사와 영화 제작사의 종용으로 그 해 8월 세 곡의 신곡을 녹음했다. 첫 싱글 ‘Exhale (Shoop Shoop)’에서 느껴지듯 특유의 폭포수 같은 창법을 자제하고 좀 더 깊이가 느껴지는 새로운 가창형태를 선보였다는 점이 괄목할 만한 변화의 일면이라 하겠다.
예전부터 나돌던 각종 루머와 남편과의 불화 설은, 휘트니를 언론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리게 했다. 하지만 일련의 소문들을 뒤로 한 채, 그녀는 세 번째 영화 [목사의 아내(The Preacher's Wife)]와 사운드트랙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휘트니는 드디어 그녀의 음악적 뿌리인 가스펠과 영화에 어울리는 레퍼토리들로 앨범 전체를 꾸몄고, 그 결과 이 작품은 가스펠 음악계 사상 가장 높은 판매를 기록하였다. 이어 1997년에 미국 [ABC-TV]에서 방영된 영화 [신데렐라]의 성공을 통해, 그녀는 또 한번 팔방미인다운 역량을 과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