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테너 색소폰의 전설, 소니 롤린스! 그가 남긴 수많은 명연들을 엄선하여 다시 한번 그의 업적을 조명했습니다. 판타지 산하의 프리스티지, 컨템포러리, 리버사이드와 마일스톤 레이블에서 그가 남긴 앨범 가운데 정수만이 수록된 Special Edition!
- 2CD Digi Package including 22 songs from 22 albums
- 선곡 및 해설 : 재즈 칼럼리스트 권석채
- 커버디자인 및 일러스트레이션 : 남무성
(현재 일본의 재즈전문 월간지 <스윙저널>에도 연재가 되고
있는 "만화로 보는 재즈 역사 100년, jazz it up!"의 지은이)
- 96KHz/24Bit Remastering, 16 Page Booklet 삽입
현대 재즈의 진정한 스승이자 시공을 초월하여 절대 커지지 않는 가장 아름다운 재즈의 한 단면을 만끽하게 해준 살아있는 테너 색소폰의 거장 소니 롤린스의 일대기가 담긴 바이블!
이 앨범은 크게 1950년대와 1970년대 이후 그의 음악을 담고 있다. 두 시기의 음악을 비교해 듣는 재미와 함께 대중에게 홀대 받는 1970년대 이후 롤린스의 음악을 정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그라모폰 코리아 <2005년 3월호>
6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의 소니 롤린스의 음악을 담은 두 번째 CD는 그동안 ‘Saxophone Colossus'를 위시한 몇 장의 앨범으로 그를 이해하고 있는 감상자들에게 색다른 음악 경험을 제공해준다. --- 코다 <2005년 3월호>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니 롤린스의 음악은 1950년대에 고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앨범은 소니 롤린스의 50년과 그 이후 음악을 비교해 가며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프라우드 <2005년 3월호>
소니 롤린스가 1957년 블루 노트에서 발표한 을 연상케 하는 이 앨범은 두 장의 시디에 그의 진면목을 담아냈다. 특히 단 한차례 있었던 존 콜트레인과의 배틀 ‘Tenor Madness'을 비롯하여 재즈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곡들을 만나볼 수있다. --- MMJAZZ <2005년 3월호>
작은 재즈시장에도 불구하고 모든 정성을 다해 만든 의미 있는 편집앨범.
1. 버브, 블루 노트와 더불어 재즈 레이블의 대표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판타지 산하의 프리스티지, 컨템포러리, 리버사이드와 마일스톤에서 소니 롤린스가 남긴 명연들을 두 장의 음반에 엄선하여 담은 앨범.
2. 재즈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인 권 석채가 직접 선곡과 해설을 맡아 소니 롤린스의 일대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으며 초심자뿐만 아니라 재즈 매니아에게도 크게 어필 할 수 있는 앨범.
3. 진부했던 재즈 음반의 커버에 관한 인식을 전환 시켜줄 디자인으로 그 소장가치를 더욱 더 높여 주고 있는 앨범. 만화로 보는 재즈 역사 100년 의 저자인 남 무성이 커버 아트와 앨범 안의 일러스트를 담당해 재즈를 모르는 초심자들에게도 친근함을 불러 일으킬 수 있도록 그 독특함을 더한 앨범.
4. 연대기별로 작품이 정리되어 있으며, 앨범에 관련된 모든 레코딩 데이터가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어 그간 발매된 여타 아티스트의 베스트 앨범과는 차별성을 지닌 앨범.
5. 96kHz/24Bit 디지털 리마스트링으로 더욱더 선명하고 다이나믹한 음질을 즐길 수 있다.
<권 석채 (재즈 칼럼리스트) – 선곡 및 해설>
레코드 포럼, 코다 등을 통하여 기고를 하였으며, 국내 최초로 굴지의 재즈 레이블인 Blue Note 1500 Series (저서)에 관하여 체계적인 정리를 하였으며, 현재 프라우드, 그라모폰 등을 통하여 기고를 하고 있다. 또한 EMI, UNIVERSAL 등 음반사 편집음반 선곡 및 해설지를 통하여 기고를 하고 있으며 기타 재즈 관련 잡지에 관련하여 다양한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남무성 (재즈 비평가, Jazz It Up! 만화로 보는 재즈 역사 100년의 저자) – 커버 및 삽화 일러스트레이션>
한국 최초의 재즈 전문 월간지 몽크뭉크(MM JAZZ)를 창간, 발행인 겸 편집인을 역임(1997년 11월~1999년 2월), 재즈 전문 월간지 두밥(Doobop)에서 편집인으로 역임(1999년 3월~2001년 1월). 당시 한국의 재즈 연주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재즈 부문 시상식을 거행하였고 , , <대한민국 재즈 페스티벌 2000> 등의 재즈공연을 주최, 혹은 기획에 참여. 2002년 5월에는 가수 서영은의 3집 앨범 를 프로듀싱 했으며 2003년 9월에는 직접 글과 그림을 집필한 최초의 재즈만화 단행본 을 출간하였다. 현재 은 일본의 최다 발행 부수 재즈 월간지 에서 독점으로 2005년 1월호부터 매달 연재되고 있다. 남 무성은 현재 방송과 음반, 신문, 공연 등에서 재즈 칼럼리스트와 강연활동을 병행 중이다.
살아있는 테너 자이언트, 소니 롤린스
몇 해 전 어느 재즈 동호회에서 재즈와 관련된 다양한 내용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수많은 설문 중에 기억에 남는 것 하나는 재즈에 가장 적합한 이미지를 지닌 악기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많은 사람들이 악기에 대한 특징과 왜 이 악기가 재즈에 가장 적합한 이미지인가를 설명하는 글들을 올렸다. 결국 재즈하면 떠오르는, 즉 재즈를 대표할 수 있는 이미지를 지닌 악기에 선정된 것은 색소폰, 그 중에서도 테너 색소폰이었다. 재즈의 역사를 보면 색소폰은 1930년대 이전까지 재즈에서는 그다지 중요성이 없었던 악기였다. 색소폰을 연주하는 사람도 적었고 혹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저 흔하지 않은 악기를 연주하는 기인(奇人)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스윙 시대에 들어서면서 뛰어난 색소폰 연주자들이 등장해 밴드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하면서 색소폰은 재즈에 있어 점차 비중 있는 악기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던 재즈 시대가 열리면서 바야흐로 재즈에 있어서 색소폰의 시대는 막을 열게 된다.
History of Tenor Saxophone
색소폰은 소프라노, 알토, 테너 그리고 바리톤을 포함한 베이스 색소폰 등 크게 네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모든 색소폰이 중요하겠지만 이 가운데 하나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 테너 색소폰을 골라야 할 만큼 테너 색소폰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재즈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악기이다. 남성다운 기품과 당당함이 가득 베어 있는 중후한 톤을 지닌 테너 색소폰, 오넷 콜맨(Ornette Coleman)은 테너 색소폰을 가리켜 흑인들의 영혼을 가장 잘 표현하는 악기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잠시 테너 색소폰의 역사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을 듯싶다. 초기 테너 색소폰의 독보적인 인물은 테너 색소폰의 아버지라 불렸던 콜맨 호킨스(Colman Hawkins)다. 그의 압도적인 연주 - 극적 효과를 나타내는 선율과 풍부한 사운드 그리고 재즈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즉흥연주까지 - 는 사람들이 테너 색소폰에 열광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이 계기를 이어간 사람은 색소폰의 대통령이란 의미의 프레즈(Prez)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레스터 영(Lester Young)이었다. 그는 콜맨 호킨스와 비교해 좀 더 부드럽고 가벼우며 신선함이 담긴 밝은 연주를 선보여 테너 색소폰의 숨겨진 또 다른 매력을 발산했고 이는 후대 테너 색소폰 연주자는 물론 쿨 스타일의 재즈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부분의 테너 색소폰 연주자들은 콜맨 호킨스와 레스터 영이라는 두 거장의 영향 하에서 발전을 거듭했다(전체적으로 호킨스보다는 영의 영향력이 조금 더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50년대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의 등장으로 테너 색소폰의 역사에 있어 레스터 영의 영향력은 점차 감소되는 듯 보였으며 50년대 후반 소니 롤린스의 압도적인 영향력이 발휘되면서 레스터 영의 영향력은 끝을 고하게 된다.
No.1 Tenor Giant Sonny Rollins
소니 롤린스는 1930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는 피아노를 연주함으로 음악에 첫 발을 내딛었다. 피아노를 이어 색소폰에 관심을 갖고 알토 색소폰을 연주하던 그는 1946년이 되어서야 자신의 음악을 빛내줄 악기인 테너 색소폰을 비로소 연주하게 된다. 그는 1946년부터 아트 블래키(Art Blakey), 태드 다메론(Tadd Dameron), 버드 파웰(Bud Powell),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패츠 나바로(Fats Navarro),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 등 비밥의 중요 연주자들과 연주를 시작했다. 1949년 밥스 곤잘레스(Babs Gonzales)의 음반에 참여, 첫 번째 레코딩을 시작하면서 소니 롤린스는 모던 재즈의 황금기인 하드 밥 시대를 화려하게 열어나갈 연주자로 점차 주목받게 된다. 1951년 마일즈 데이비스와 델로니어스 몽크와의 연주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한 그는 1955년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과 맥스 로치(Max Roach)가 주도하는 퀸텟에 참여 브라우니가 세상을 떠나게 되는 1957년까지 소니 롤린스만의 예리하고 개성적인 사운드를 선보이며 하드 밥의 중심에 다가서게 된다.
당시 재즈를 주도하던 중심인물들과의 활동과 함께 소니 롤린스는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추구하게 되는데 1951년 자신의 첫 번째 리더작인 이 그 시발점이 된다. 소니 롤린스는 1959년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테너 색소폰 연주자로서의 독보적 위치를 - 적어도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이 자신만의 음악을 선보이기 전까지 - 점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59년 당시 음악의 흐름과 자신의 모습에 대해 - 아마도 콜트레인의 탁월한 음악을 접한 이후 그에 따른 충격으로 생각되는 - 충격과 실망감을 갖게 된 그는 돌연 활동을 중단했고 2년이 지난 1961년이 되어서야 다시 복귀하게 된다. 그는 복귀와 더불어 이전과는 조금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