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재즈 음악계를 대표하는 거장 트럼페터 엔리코 라바. 17년만에 ECM에서 발표한 앨범이자 전통적 아름다움과 스타일을 담은 2004년 앨범 [Easy Living]으로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던 그는 거장 드러머 폴 모션 그리고 떠오르는 신예 피아니스트 스테파노 볼라니와 함께 한 이 작품을 아름답고 감미로운 발라드를 선보인다. 거쉰의 명곡 ‘The Man I Love'를 필두로 세심하게 전개되는 매력적인 멜로디와 아름다운 하모니가 돋보이는 2005년 최고의 걸작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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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코 라바의 최근 ECM 작품들은 70, 80년대 ECM, Blacksaint 레이블의 작품들과는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젊은 시절의 넘치는 박력으로 거침없이 몰아붙이며 현란하고 실험적인 연주를 보였던 것과는 달리 요즘의 라바는 대개 피아노와의 듀엣이나 트리오 형태로 팀을 구성, 조용하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04년에 발표한 전작은 타이틀마저 'Easy Living'이 아니었던가.) 아마도 패기넘쳤던 시절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삶에 대한 깊이와 연륜이 음악적으로도 진중하게 표현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피아노, 드럼, 트럼펫으로 구성된 이번 작품에서는 여전히 깊고 차분한 음악을 보여주면서 보다 짙게 물든 그만의 색채를 연주한다. 울림을 크게 잡은 라바의 트럼펫 사운드는 마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서 하늘을 향해 흩뿌려지는 영혼의 울림처럼 들린다. 격하지 않고, 한 음 한 음에 충실하며 여백을 많이 남겨 둔 그의 연주는 듣는 이에게 사색의 여유를 안겨준다.
함께 하고 있는 폴 모션과 스테파노 볼라니의 연주도 빼놓을 수 없는데, 폴 모션은 전곡에 걸쳐서 끊임없이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리듬을 구사하며, 스테파노 볼라니는 때로는 사티인 듯 차분하고 고요하게, 때로는 쇼팽인 듯 우아하면서도 힘 있게 연주하며 라바가 남겨놓은 여백에 깔끔한 덧칠로 마무리한다.
이번 앨범은 포스트 밥과 프리재즈를 오가며 70, 80년대를 풍미했던 한 거장이 수십년 동안의 깊이와 연륜으로 다다른 또다른 예술의 경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