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목상대할 만한 꿈나라 이야기.
2008-02-23
2월 2일, 토요일. 고등학교 시절의 음악 동지, 친애하는 라피 군을 만나기 위해 나는 수원으로 떠났었다. 그러는 김에 앨범이 오고 갔는데, 나는 처분하려던 킬스위치 인게이지의 3집을 주었고 라피는 소나타 악티카의 Unia 앨범과 For the Sake of Revenge 라이브 앨범(CD&DVD)으로 화답했다. 나는 Unia 앨범을 구하려고 했지만 계속 짬이 안 나던 참이었다. 그런 경험들 있지 않은가? 위시리스트에는 올려놓고 살 때마다 자꾸 뒤로 밀리는 그런 앨범들. 그러던 차에 술자리에서 내가 꺼낸 Unia 앨범 얘기에 라피가 자기한텐 별로였단 소리를 하는 걸 듣자마자 나 달라고 선언해놓은 상태였다. 그걸 그 날 받아낸 것이다.
핫뮤직 2004년 5월호, 그러니까 최후의 핫뮤직 샘플러에 들어있던 San Sebastian이 내가 처음으로 들은 소나타 악티카의 곡이었다. 그 당시에는 흥겹게 듣기에 좋았다라는 생각 뿐이었고. 나중에 보니까 소나타 악티카라는 밴드는 새로이 혜성 같이 등장한 핀란드 밴드로서, 무척이나 인기를 끄는 만큼 욕도 먹는다고 하는 것이다. 소나타 악티카는 스트라토바리우스의 장막에서 독자적인 개성이 결핍되어 있다며 평가절하 받아왔다. 또한 보컬의 라이브 역량 문제도 입도마에 오르곤 했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라이브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뭐라 말은 못 하겠지만, 고등학교 때 라피가 가지고 있는 CD들을 빌려 들을 때도 나는 보컬을 조금 맘에 안 들어했다. 뭐랄까 그만의 색깔이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고 할까. 그런 것도 있고, 내가 유럽식 멜로딕 메탈에서 취미가 멀어진 탓에 소나타 악티카와는 더더욱 인연이 없어졌다. 그러던 와중에 작년 6월 즈음 나는 소나타 악티카의 새 앨범의 뮤직비디오로 나온 Paid in Full을 듣자마자 정신이 홱 나가버렸다. 소나타 악티카는 그 한 곡으로 이전까지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비호감을 깨고 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번 앨범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소나타 악티카의 액셀러레이터에 제동이 강하게 걸려있다는 점이다. 곡의 템포들이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다운됐으며, 연주진의 휘날리는 솔로도 자제되고 철저히 곡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쪽으로 팀이 집중하고 있다. (그런 건 수록곡 중 The Harvest에서나 찾을 수 있다.) Paid in Full과 For the Sake of Revenge 같은 경우, 차분한 곡 분위기와 함께 우울한 느낌이 가득 배인 토니 카코의 보컬이 청자를 잔잔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토니 카코의 보컬은 거슬리는 몇몇 부분만 빼면 앨범 전체에 걸쳐 정말 너무나도 매혹적인 목소리를 들려주며, 그 특유의 색깔이 앨범 타이틀의 뜻인 꿈에 빠져든 것 같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 뿐 아니라 프로그레시브적인 요소의 전면적인 도입들은 정말로 ''신선''하다. Caleb, My Dream''s but a Drop of Fuel for a Nightmare, Fly with the Black Swan 등의 대놓고 프로그레시브 스타일을 노리는 곡들은 놀라울 정도다. 특히 그 중 백미는 한 비극적인 가정사를 그린 곡, Caleb이다.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 후렴구나 솔로 진행이 없이도 매끄럽고 감동적인 파장을 가슴에 안겨준다. (클라이맥스로 느껴질 만한 감정 폭발도 가운데 달랑 한 번! 그것도 굉장히 자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의 베스트 넘버로 꼽고 싶기도 하다. 이어지는 The Vice는 마치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의 떼창과 연주 등이 이채로운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프로그레시브적인 요소를 도입하는 메탈들이 대개 ''1절-후렴-2절-후렴-솔로나 중간가사 범벅-앞의 테마로 귀환''이라는, 어떻게 보면 장르의 이름(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진보.) 자체와 모순적으로 보이는 구태를 보이기도 하지만, 소나타 악티카는 당연히 반복될 만한 후렴구를 뒤틀어 빼버린다든지, 클라이맥스를 터뜨리고도 곡의 방향을 휘어 다른 방향으로 간다든지, 연극적인 느낌의 코러스의 동원한다든지, 정말 흥미진진하면서도 격렬함과 화려함은 자제한 오묘한 재미를 안겨준다.
물론 비교적 메탈의 원형에 충실한 곡들도 존재하기는 한다. 앞서 말했던 The Harvest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4번 곡인 It Won''t Fade를 추천하고 싶다. 이 곡 같은 경우엔 강력한 리프를 앞세움과 동시에 중반부 이후에 이뤄지는 변화의 흐름과 복귀가 유기적으로 잘 붙어있어, 프로그레시브 메탈 넘버로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곡이다. 역시 앨범에서 손꼽힐 만한 곡들 중 하나다.
이런 변신은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는 듯하나, 밴드의 본래의 힘을 잃었다느니 어줍잖다니 욕을 먹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도 말했듯이 나는 이 앨범이야말로 진정으로 소나타 악티카스러운 앨범, 그러니까 더 이상 스트라토바리우스와 엮이기 싫어하는 오롯한 하나의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보이는 참말로 멋진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런 스타일을 시간을 두고 더 다듬고 덧붙여서 다음 앨범을 내놓아주면 정말로 좋아하는 밴드로 삼아줄테다. 하핫, 나 같은 개인 하나가 그런 종이 왕관 씌어준다고 뭐 달라질 것 있겠냐만... 난 기대하지 않았던 옛 동창이 끝장나는 킹카로 변해 전학온 걸 본 질풍노도 소녀의 마음이라구, 지금...
7/10
2008.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