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적인 멋과 음악, 미술의 유기적 결합으로 탄생한 앨범
2008-06-28
- 국내 음악 시장에서는 아직 낯선, 일렉트로닉 / 라운지를 과감하게 도입
대략 3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내 모 CF에 삽입된 것으로 알고 있는 Fake Love Song의 English Version을 우연히 듣게 되면서 포츈쿠키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처음 Fake Love Song을 들었을 때 뇌리에 스친 것은 딱 두 가지였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라운지 그룹일 것이란 막연함과, 얼핏 클래지콰이가 연상된다는 안일함의 조합. 포츈쿠키가 국내 뮤지션일 것이란 생각은 전혀 갖지 못했다. 유행에 민감하며, 생명력이 짧은 국내 음악 시장에 생소할 수 밖에 없는, 일렉트로닉 / 라운지를 과감히 도입할 수 있는 추진력을 갖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하지만 포츈쿠키의 데뷔 앨범은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고, 그 장르가 크게 활성화 되진 않았지만 그들만의 영역을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사실 포츈쿠키의 데뷔 앨범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의 화려함은 없다. 어쩌면 극히 소소한 일상에 등장한 작은 설렘 내지는 즐거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소박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을 연상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 의미를 확장한다면, 어느 장소에서나 들을 수 있는 Free한 장르로도 통용되는 라운지음악을 좀 더 세련된 형태로 표현한 포츈쿠키의 시도가 성공적이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 특유의 아날로그적인 멋과, 음악과 미술의 유기적 결합으로 탄생한 두 번째 앨범
처음의 신선함은, 두 번째에서는 약발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뮤지션들이 두 번째 앨범을 공개하는 시점에 평론가들은, 지긋지긋하게 남발되는 단어라 할 수 있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즐긴다. 이 징크스는 쉽게 말해 ‘1편만한 2편 없다’ 혹은 ‘1편만큼 성공할 수 있는 속편은 많지 않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츈쿠키도 이와 같은 징크스에 편입될 수 밖에 없을까?
조금 이른 결론이긴 하지만, 그에 대한 답변은 ‘아니오’ 가 맞다. 미술을 전공한 멤버들은 자신의 예술적 역량이 보다 유기적으로 결합되길 원했고, 기대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음악으로 그리는 그림, 그림으로 창조하는 음악. 그들의 두 번째 앨범의 우리의 눈과 귀를 동시에 유혹하고 있다.
하나의 특별한 예로, 포츈쿠키의 보컬이자 젊은 미술작가로 활동중인 홍보람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완성한 동판화 한정판은 국내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수작업은 사실 해외에서도 흔치 않은 케이스로, 향후 이 한정판의 가치는 대단히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의 ''수작업 혁명''으로, 손으로 제작한 종이 인형을 직접 촬영하여 제작한 ‘일요일 아침’ 뮤직비디오를 언급할 수 있다. 이것은 ‘아날로그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이처럼 새로운 시도로 가득한 포츈쿠키의 두 번째 앨범은, 음악 외적인 면에서도 많은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포츈쿠키의 중심은 역시 ‘음악’에 있다. 고전적인 사운드에 익숙한 팬들은 이번 앨범이, 세련된 일렉트로닉에 아날로그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의 트렌드를 의식하지 않고, 좀 더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하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타이틀 곡 <일요일 아침>은 보사노바 풍으로, 대중적 센스가 깃든 곡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리듬과 살짝 몽환적으로 깔리는 키보드가 일품이다. 의도적인 멋을 부리지 않아도, 저절로 멋을 풍기는 포츈쿠키의 음악적 특성을 보여준다.
오프닝을 장식한 <포츈쿠키>는 두 번째 앨범의 이미지를 총괄한 곡이라 할 수 있다. 음악 박람회라 해도 과언이 아닐 다양한 요소들이 뒤섞여, 특정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포츈쿠키의 다양성을 과시한다. 신비하면서도 경쾌한, 제법 오묘한 느낌의 사운드는 흥미를 더해준다. 앨범의 동명 타이틀 곡인 <흰 코끼리 같은 언덕 (Hills Like White Elephants)>은 동화 같은 제목만큼 순수함이 깃든 곡이다. 수줍은 듯한 감수성과 신비한 느낌은, 손으로 그려내는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무엇인지를 정의한다.
비틀즈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Lonely Heart Club에 절로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년 전인 1967년, 비틀즈가 공개한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서 모티브를 따온 곡이기 때문이다. 비틀즈의 이 앨범은 인상적인 커버 아트워크와 혁신적인 음악들로 인해, 20세기 대중음악 중 가장 큰 찬사를 받는 명반이다. 포츈쿠키가 들려주는 또한 실험적이면서 아날로그적인 사운드와 펑키한 비트를 가미한 독창적인 스타일로 완성되었다. 이 곡을 통해 그들은 스스로의 위치를 격상시킨 비틀즈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한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최고의 곡으로 꼽고 싶다.
시간의 때가 묻어나는 인도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몽유도원가 (夢遊桃源歌)>도 상당히 이색적이다. 1960년대의 싸이키델릭 사운드와 같은 강한 느낌은 덜하지만, 포츈쿠키의 시도는 매우 신선하다. 6분이 넘는 대곡으로, 취향에 따라 반응이 엇갈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각 나그네가 피쳐링으로 참여한 또한 6분이 넘는 대곡이자, 몽환적인 느낌을 선사하는 곡이다. 곡의 중반부에 각 나그네의 래핑이 등장하기도 한다.
<춘가 (春歌)>는 유심히 들어볼수록 흥미로운, 나른한 곡으로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색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Winter Story는 경쾌한 느낌과 재지한 무드가 빅밴드를 연상시키기도 하며, 엔딩을 장식하는 Come And Meet My Frequency는 또 하나의 사운드 혁명을 선사한다. 오케스트레이션의 등장과 알아듣기 힘든 중얼거림, 점진적으로 스케일을 키우는 사운드… 포츈쿠키의 변신을 상기하는데 있어 더 없이 적합한 엔딩이다.
그들은 변했다. 포츈쿠키와 같은 진보적 성향의 뮤지션에게 변화는 그리 낯선 선택이 아닐 것이다. 이번 앨범을 들으면 문득 고즈넉한 LP 사운드가 그립다. 화려하진 못하나 아늑하고 깊이가 있는 소리를 들려주었던 추억의 레코드 판과 잡음이 말이다. 현대적인 음악을 하는 뮤지션으로 분류되는 포츈쿠키를 통해 아날로그적 향수에 빠진다는 것은, 소소한 일상에 깃든 또 하나의 즐거움이자 신선한 자극이다.
written by 윤태호 (styx020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