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여들지 않음에대한 냉소를 퍼붓다
2010-06-04
역시, 여하간에, 곤란하기는 마찬가지. 별로 인상적이지 않은 평범한 비트 위로 메스꺼운 전자 노이즈가 얹혀집니다. 주의할 것은, 이것이 말 그대로 ''그냥'' 얹혀져 있다는 점. 같은 리듬과 속도를 공유함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데면데면, 지하철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정도의 인연이랄까요? 사실 이쯤 되면 ''관계''라는 말을 붙이기도 참 애매하죠. 곧이어 누구 말마따나 ''나근대는'' 목소리와 기타가 들어오기는 하지만, 상황이 바뀔 것은 없습니다. 꽤 달콤한 연주와 전자 노이즈는 서로에게 전연 섞여들려 하지 않지요. 관계를 맺는 그 자체를 거부하는 뉘앙스입니다.
노이즈, 기타, 전자 비트. 거기에 로파이 코드와 한국이라는 국적까지를 덧붙여 놓으면 이쯤, 어떤 이들은 자연스레 전자양의 [Day Is Far Too Long]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로 사용하는 요소들이 비슷하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연상일 수도 있는데, 그러나 결과물 자체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띠게 됩니다. 말하자면 화합물과 혼합물의 차이 같은 것인데, 전자양이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그가 활용 가능한 요소들을 ''방구석''의 정서를 기반으로 통일성 있게 배열하여 일종의 무드(mood)를 성공적으로 창출해냈음에 반하여 마틸다스 래빗은 그렇지 못하고(혹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전자양의 요소들이 촉촉하여 서로에게 잘 섞여듬과는 대비되어, 마틸다스 래빗의 요소들은 지나치게 건조합니다. 특히 이하의 트랙들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전자 노이즈들이 그러할 지언데, 이는 결과적으로 통일된 무드의 부재로 이어집니다. 드라마가 전개 되려 해도 노이즈가 계속 가로 막지요. 그 노이즈라는 놈이 무척이나 하드-보일드한 지경의 단순함을 제1의 미덕으로 삼는 녀석인 관계로, IDM식의 지적인 쾌감을 맛보는 것도 곤란합니다. 무기질일 게 분명한 전자 노이즈는, 주제에 이상하게 육감적으로 다가오지요. 노이즈가 드라마를 단절시키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드라마에 집중을 못 하게 계속 난동을 부리는 것이죠. 조금 유물론적인, 세련되지는 못한 방식이지만 이것이 되려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어떤 감정을 유발하려는 것이 아닌, 감정 자체를 ''난파''시켜 버리려는 의도였다면 말이지요. 간혹 이나 같이 드라마가 강조된 매력적인 팝 트랙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경우에서 우리는 곧잘 길을 잃기 일쑤입니다. 기타와 목소리가 직조하는 드라마와 하드-보일드한 노이즈의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쉽게 따라가지를 못하고 헤매기 마련이지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 불친절하기 짝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