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One Foot In The Grave [CD]

B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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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k 의 최고 힛트곡인 ‘Loser’ 시절 인디레이블 K 레코드에서 발매 된 초창기 Beck 원년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앨범


우디거스리, 프레드 맥도웰 등을 흠모하던 시절의 그가 포크와 컨트리, 가스펠과 블루스 등 음악의 기원과 본질에 몰두하던 시절의 음반.


K 레코드의 설립자이자 모디스트 마우스,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 옌스 렉만, 가십 등 을 프로듀싱한 캘빈 존슨과의 합작품으로 더욱 의미가 깊다.


2009년 리이슈 기념 디지탈 리마스터링과, 16 곡의 보너스트랙을 추가한 스페셜 디럭스 팩키지로 발매 (미발매곡 12곡 포함)


장르음악의 원형을 찾아서 [One Foot in the Grave](1994)


90년대 초엽의 이야기다. 언더그라운드를 전전하던 한 인재를 누군가 알아봤다.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건넸다. “메이저 레코드사와 계약하겠나?” 벡의 대답은 ‘부분적인 예스’였다. 그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수락하되 인디활동도 병행하겠다면?” 조율 후 계약은 체결됐고 그는 주류 레코드사인 게펜 레코드를 통해 본격적인 메이저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플립사이드Flipside, 케이 레코드K Records 같은 독립레이블에서 만들었거나 만들고 있었던 앨범을 함께 공개한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다만 이제는 소규모 레코드사가 넘볼 수 없는 거물이 되어버렸을 뿐, 지금까지 그는 별다른 마찰없이 대기업에서 비주류적인 앨범을 성공적으로 만들고 있다. 주류무대에 입성했다 한들 절대로 타락하지 않을 이 비범한 스타의 등장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승리를 부른 패배의 노래
그는 1970년 태어났다. LA에서 보낸 십대 시절 포크에 매료되었고 뉴욕으로 잠깐 이주했던 이십대의 문턱에서는 안티 포크 운동(뉴욕과 영국을 중심으로, 포크의 상업화에 반대하고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의 무브먼트)을 발견하고는 포크를 새롭게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세상이 보편적으로 기억하는 벡의 원년은 그 이후, 즉 94년이다. 그해 메이저 데뷔 앨범 [Mellow Gold]가 출반되면서 ‘Loser’가 MTV를 강타했기 때문이고 곧 당대 젊은이들의 스타일과 의식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노래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먹고 사느라 바빠서 MTV를 보지 못했고, 먹고 사느라 바빠서 내가 엑스세대인지도 잘 모르겠다.” ‘Loser’를 통해서 대외적인 입지가 바뀌었을지는 몰라도 사실 그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보다 자신에 몰두하는 캐릭터이다. 사실 미디어를 향한 시크한 대답은 이미 92년에 나왔다. 그는 MTV만 보면 코카인을 하고 싶어진다고 했다(‘MTV Makes Me Want to Smoke Crack’).


하지만 결국 ‘Loser’는 무심한 벡에게 많은 기회를 안겨주었던 괴력의 싱글이다. 사실상 벡은 노래로 기억되는 인기가수가 아니라 앨범 전반으로 회자되는 명예로운 뮤지션이지만, 그가 수퍼스타로 보낸 예외적인 한때 역시도 ‘Loser’가 등장한 94년이었다. 흔치 않은 싱어 송라이터일 뿐더러 얼마든지 나이를 속일 수 있을 사기동안의 일인자이자 세계의 명 디자이너를 자극할 만한 모델급의 아름다운 육체를 가졌다는 사실도 그때 드러났다. 한편 태생이 언더였던 만큼 히트작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한 스타의 초기시절을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우리는 ‘Loser’ 덕분에 다량으로 만날 수 있었다. 엄청난 보너스 트랙을 추가해 새롭게 출시되는 오늘의 앨범 [One Foot in the Grave](1994, K Records)를 비롯해 [Stereopathetic Soulmanure](1994, Flipside) [A Western Harvest Field by Moonlight](1994, Fingerpaint Records) [Golden Feelings](1993, Sonic Enemy)는 결국 ‘Loser’에 모든 공을 돌려야 할 앨범이다.


원형의 사운드에 몰두하던 시절
흔히들 벡을 믹스매치의 달인이라 이야기한다. 그 기이한 사운드는 미술의 일반적인 스킬을 동원해 묘사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그는 이리저리 섞고 갖다 붙이고 다시 뜯어내고 다시 끼워넣는 요란하고 복잡한 수공으로 초현실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작가다. 피해간 장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분야별 수거와 활용의 달인으로 활약해온 가운데 가장 즐기는 패턴이 있었으니 이는 포크를 중앙에 두고 힙합 비트를 얹는 조합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턴테이블은 그가 어느 앨범에서나 거의 잊지 않고 지참하던 장비다. 칼 스티븐슨(‘Loser’를 함께 만든 인물로 원래 힙합 프로듀서로 활동했다)을 비롯해 더스트 브라더스(케미컬 브라더스의 전신), 그리고 최근의 데인저 마우스(날스 바클리의 멤버이자 고릴라즈의 프로듀서)까지 힙합 및 일렉트로닉계 인사들과 함께 부단히 앨범을 완성해왔다는 사실 역시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One Foot in the Grave]는 샘플링의 마법과 프로듀싱의 자본에 눈뜨기 이전의 벡을 만날 수 있는 앨범이다. 열여섯에 학교를 그만두고 거리로 나와 LA에서 뉴욕을 가로지르는 지난한 여정 안에서, 무심하고 무정한 관객 앞에서 노래하던 시절을 상상해볼 수 있는 흔적이기도 하다. 우디 거스리, 블라인드 윌리 존슨, 프레드 맥도웰, 미시시피 존 허트 등의 아티스트를 진심으로 흠모하던 시절, 당시의 관심사는 포크와 컨트리와 가스펠과 블루스의 스탠더드들을 만족스럽게 모사하는 일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그는 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미국의 장르음악을 따르기 이전에, 시계를 더 돌려 그 기원과 본질에 몰두하는 남다른 청춘을 살아왔다. [One Foot in the Grave]는 블루스의 고전 ‘He’s a Mighty Good Leader’(원곡은 스킵 제임스Skip James)를 첫곡으로 배치한 사실이 말해주듯 원형의 포크와 블루스를 복원하는 일이야말로 앨범의 우선적인 미션이었다.


당시의 동반자
언제나 그에게는 지혜롭거나 흥미로운 프로급 동반자가 있었다. 이는 가계도로부터 출발하는데, 그는 예술을 아는 가풍에서 나고 자랐다. 친부 데이비드 켐벨은 대표적인 블루그래스 뮤지션으로, 에어로스미스, 그린데이 등의 앨범에서 현악 편곡을 담당한 바 있다. 친모 비비 한센은 앤디 워홀 군단의 일원이었고 외조부 알 한센은 국제적 전위예술 운동 ‘플럭서스’의 실세였으며 외조모 오드리 한센은 배우이자 시인으로 살았다. 예술가의 품을 벗어난 이후에는 전문가가 꼬이기 시작했다. 더스트 브라더스, 나이젤 고드리치, 데인저 마우스 등 지난 10여년간 영미음악의 중요한 순간들을 통과했던 베테랑 프로듀서들에게 그는 상업적인 교류가 아닌 실험적인 소통의 기회를 선사했다.


초기시절의 [One Foot in the Grave]에도 유명한 인물이 있다. 앨범 커버에도 벡과 같은 지분으로 등장하는 캘빈 존슨Calvin Johnson이다. 앨범을 출시한 케이 레코드의 설립자이자 7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해 가수로, 기타리스트로, DJ로 활약해온 바 있는 그는 전방위 거물급 프로듀서로 꼽힌다. 벡을 비롯해 모디스트 마우스,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 옌스 렉만, 가십 등 열거불가한 숱한 뮤지션이 그에게 프로듀싱과 엔지니어링을 맡긴 바 있다. 오래 전부터 후방에서 경력을 쌓고 있던 캘빈은 블루스와 포크에 대한 벡의 내공이 수준급임을 알아챘고 그를 덥 나커틱 스튜디오Dub Narcotic Studio로 초빙했다. 그곳은 캘빈 집의 지하실이기도 했다.


기본에서 시작되는 실험
인상평가의 범위를 음악으로 좁힌다 해도 벡은 규정이 어려운 유형에 속한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음악을 그는 지치지도 않고 추구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의 새 앨범이 사실상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의 실험은 실험이 아니라 일상이다. 다만 분명한 건 해체와 분해와 혼합과 변용에 매우 능숙한 뮤지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상적 조작은 피상적인 퓨전이 아니라 결국 장르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그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블루스와 포크에 정통했던 시절의 [One Foot in the Grave]가 보인다. 그는 재야에서 기본을 정석으로 마스터한 인물이다. 오랜 연구와 경험이 내제되어 있는 뮤지션인 것이다.


누군가는 [Definitely Maybe]와 [Nevermind], 그리고 [Odelay]만으로 90년대 음악의 지형도를 그릴 수 있다고 단언한다. 오아시스가 로큰롤의 아름다운 전통을 복원했고 너바나가 혁명의 도래를 의미했다면, 벡은 전통과 혁명 모두를 완수했는지도 모른다. 추동력은 정신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근본과 자유였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그렇게 산다. 예부터 지금까지 지극히 인디적인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해독이 쉽지 않은 앨범을 발표하면서도 언제나 메이저 레코드사의 자유인으로 살고 있다. 변해야 하는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작품을 완성하기 때문이며 그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호응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앨범을 시대순으로 들어보면 된다. 변하지 않은 그의 가치를 확인하려면 역순으로 그를 추적해보면 된다. 94년의 [One Foot in the Grave]은 화려하지 않은 벡을 말해주는 앨범이다. 하지만 가장 견고한 벡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2009/06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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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리이슈 기념 디지탈 리마스터링과, 16곡의 보너스트랙을 추가한 스페셜 디럭스 팩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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