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ll gone ’80s
80년대는 참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시기였다. 70년대 말 시작된 스타워즈의 열풍에 이어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막을 열었고, 고스트 버스터즈, ET, 구니스, 빅, 그렘린 등 끝없이 쏟아져 나왔던 주옥 같은 어드벤쳐, 판타지 영화들..
무엇보다 80년대 팝 씬을 풍미한 유로 댄스나 신스 팝, 뉴 웨이브의 영향은 막대했다. 아하(A-Ha), 뉴 오더(New Order), 펫 숍 보이즈(Pet Shop Boys),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등 수 없이 많은 밴드들이 팬덤을 양산했고, 뉴 오더의 ‘Blue Monday’가 역사상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12인치 싱글로 남아 있다거나, 아하의 ‘Take on Me’가 현재까지도 영상 학도들에게 로토스코핑 기법의 표본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골드프랩의 신작 [Head First]를 들으니 80년대의 추억이 방울방울 머릿속에 샘솟는다.
데뷔 작 [Felt Mountain] 때부터 조금씩 색 다른 시도를 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더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면서 음악적 성향과 보컬의 기교에 독특한 색채를 그려온 골드프랩이 이번에 선보이는 컨셉은 바로 “80년대에 바치는 경의” 와도 같은 복고풍 사운드였다.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잔잔한 포크와 발라드, 사이키델릭의 선상을 표류하며 듣는 즐거움을 제공했던 전작 [Seventh Tree]는 아마도 2006년 히트작 [Supernature]의 댄스플로어용 사운드를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허기를 느끼게 했을 수도 있다. 공작새 꼬리를 달고 고혹적인 자태로 “어머나~(Ooh la la!)”를 외치던 골드프랩의 모습이 그리웠던 이들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골드프랩은 영국 일렉트로닉/팝 음악 시장에서 10년이 넘도록 참 입지를 잘 다져온 밴드이다. 몽환적이고 황홀한 보컬을 지닌 프론트 우먼 앨리슨 골드프랩과 프로듀서 윌 그레고리(Will Gregory) 듀오는 신스팝, 하우스, 다운템포에서 일렉트로닉 포크에 이르기까지 전자 음악의 한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스타일로 이상적인 하모니를 엮어내 왔다.
또한 저음의 허스키한 보컬과 달리 깨질 듯한 도자기 인형 같은 외모를 지닌 앨리슨 골드프랩은 스타일 뮤즈로 불릴 정도의 패셔니스타로, 공연 때마다 쉬크한 무대 의상을 마음껏 뽐내며 패션 감각을 뛰어넘는 카리스마 라이브로 무대를 장악해 전 세계 페스티벌의 단골 라인업으로 초청을 받아오지 않았던가.
I’m feelin’ alive, shiny and warm!
이번 신보의 첫 싱글로 발탁된 ‘Rocket’의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핑크색 점프 수트를 입고 황야의 고속 도로 한 가운데에서 스타워즈의 제다이 광선 검을 들고 서 있는 듯 손에서 빔을 뿜어내는 앨리슨 골드프랩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반 헬렌의 ‘Jump’의 키보드를 연상시키는 신서사이저와 깜찍한 코러스가 첫타에 귀에 감겨 들어온다. 앨리슨의 목소리 역시 섹시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눈 앞에 선하게 보일 정도이다.
80년대의 유로 댄스 비트에 심플하면서도 중독성 강한 훅을 지닌 ‘Believer’, 미카(Mika)의 ‘Grace Kelly’ 처럼 언뜻 퀸의 사운드를 21세기 풍으로 재해석한 듯 보이는 ‘Alive’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곡을 주도해 가는 베이스의 퉁퉁 튕기는 소리가 매우 경쾌하다.
유럽풍 디스코의 전형적인 신서사이저 프로그램과 매우 친숙한 마이너 풍의 멜로디가 매력적인 ‘Dreaming’, 아바의 ‘I Had a Dream’이나 ‘Take a Chance on Me’, 영화 탑 건의 주제가 베를린의 ‘Take My Breathe Away’ 등 80년대의 클래식 튠을 혼합한 듯 추억을 자극시키는 미드 템포의 신스팝 ‘Head First’에서 앨리슨의 보이스가 여신 포스를 발산하는 다운 템포 ‘Hunt’까지 이어지는 콤비네이션이 듣는 이들을 골드프랩의 몽환적인 세계로 한껏 빠져들게 한다.
그루비한 리듬과 발랄하고 심플한 훅의 반복이 중독적인 ‘Shiny And Warm’, 4/4 비트를 바탕으로 복고 풍의 신서사이저 향연이 클라이맥스에 달하는 ‘I Wanna Life’의 신나는 분위기를 이끌고 당당히 정상에서 내려오면 벌써 앨범의 마지막을 알리는 ‘Voicething’의 허밍 하모니가 매우 아쉽게 느껴질 정도이다.
정규 앨범의 수록 곡이 불과 아홉 곡이라는 것이 아쉽지만 [Head First]는 올 여름 클럽과 페스티벌 씬을 겨냥한 듯 매우 유기적으로 잘 구성된 짜임새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20년이 지났지만 다시 세월을 거슬러 현 시대의 유행을 이끌어가고 있는 80년대 풍 복고 성향에 세련된 현대적 감각을 풀어낸 이번 작품은 골드프랩만의 21세기 형 ‘고전 팝’ 앨범으로 부를 수 있겠다.
몇 달 전 런던의 한 펍에 갔을 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80년대의 팝송들을 따라 부르다 친구들과 함께 “이런 노래 따라 부르면 나이 들통난다”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어가는 게 창피하냐고? 물론 그렇지 않다. 우리는 80년대의 풍요로운 문화적 감성과 함께 자란 세대니까.^^
홍희선(Shirley Hong 팝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