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색 도시문명의 변방에 자리한 슬로시티 담양의 생태, 느림, 평화를 빼닮은 데이비드 버클리의 [종이배]. 여러 곡의 보너스 트랙을 담고 한국 팬들을 처음 찾는다. 시인이자 순례자인 [여행자의 노래] 임의진의 초이스 앨범. 그리스의 뮤즈 사비나 야나투, 인디포크신의 기적 같은 멜랑콜리를 들려준 이노센스 미션 등에 이어 이번에는 멀리 북미의 천상 이방인 가객을 소개하고 있다. 명문 하버드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버클리는 철학교사, 여행 작가로 잠깐 일하다가 문호 D. H 로렌스가 머물기도 했던 뉴멕시코 시골로 낙향하였다. 같은 학교에서 만난 인류학 전공자 아내 사라와 어린 두 아이 잭슨, 노아와 함께 뉴멕시코 산타페에 머물고 있는 버클리는 정기 공연과 북미전역, 유럽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Son Of Town Hall'이라는 듀오밴드를 결성하여 성황리에 뉴욕 공연을 마치기도 했다.
흡사한 목청의 데미안 라이스가 아일랜드의 상쾌하고 푸른 비바람을 노래한다면 버클리의 음성엔 로키산맥의 진한 풀 내음과 사막의 선인장 꽃향기가 묻어나 있다. 최소한의 전기음향, 언플러그드를 지향하는 편성과 어릴 적 튜바를 배운 기억을 더듬어 트럼펫 등 관악기들을 적절하게 섞어냈다. 여기에 첼로 선율은 테르체트(3중창)의 진수를 들려주는데 보컬과 기타랑 근사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버클리는 이 앨범과 동명인 종이책을 펴내기도 했다. 언제라도 아마존을 통해 구입이 가능하다. 녹음 기간의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Mokum의 실황녹음, 자연미로 가득한 녹음실의 풍경이 담긴 유투브의 동영상도 아름답고 흥미롭다. 한국반 발매 보너스로 그간 대표곡 가운데 몇 곡을 더불어 수록할 수 있는 기쁨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한국에 한번도 찾아오지 않은 그를 곧 소박한 공연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한다. 보너스 트랙에 실린 북미 민요 'Shenandoah'는 가장 버클리다운 삶과 영혼이 묻어있는 곡이다. 물욕도 명망도 관심 없는 진정한 자유인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바로 세난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앨범 전체 곡들의 모퉁이마다 펼쳐지는 인스트루먼트는 애원하는 듯한 흐느낌과 미사의 후렴구에 적합한 숙연한 감정이 묻어나 있다. 그러다가 보컬이 나타나는 시점이 되면 느릿느릿 희미하게 걷는 것 같다가도 메밀꽃이 하얗게 터지는 보름밤처럼 우렁차고도 굵직한 샤우팅을 들려준다. 춥고 어두운 강물에 띄운 종이배가 어느새 바다로 흘러가서 무성한 파도소리까지 동반하여 들려주는 것처럼.
To The Sea, Cardboard Boat, Wishing Well로 이어지는 트랙은 싱그러운 낮을 걸어가다가 All Those Ashes와 Winter Wind에서 또록또록 눈을 뜬 밤별처럼 반짝거린다. 오래고 긴 방황과 순례의 끝, 노마디즘에 내재된 상징의 어휘들은 투명한 유리창의 울음과는 비교할 수 없이 뜨거운 물기를 흘러내리게 만든다. 사막 한가운데 정원의 초록 그늘아래서 도마뱀과 함께 춤추는 들꽃의 몸짓과도 같이 온몸을 흔들며 퉁기는 버클리의 기타 연주. 뭉텅뭉텅 쏟아지는 유성우라도 적막하고 신산하기까지 한 사막 도시에선 버클리의 노래와 연주가 얼마나 고마운 위안이며 다행인가. 여기에 잔상을 떠메고 지나가는 여러 연주자들의 협연은 사막의 우정만큼 각별하고도 다정한 울림을 들려준다. 낮달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함께하는 무엇들이 소중하듯이 이 앨범에서 버클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모험이나 격정이 아닌 온유하고 인내심 깊은 사랑이다. 뉴멕시코 사막에서 그가 삶을 통해 배운 철학은 참고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사랑인 듯 싶다. 여행자는 찾아가는 직업이 아니라 기다리는 직업인 것이 분명하다. 여행자는 기다리기에 마중을 나가는 것이리라. 이 노래들이 사랑스런 당신을 마중 나가 다정하게 포옹하여 주고, 이토록 아프고 힘겨운 시절 함께 해주기만을 두 손 모아 바란다. (리버맨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