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앨범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 루이 말(Louis Malle) 감독의 동명의 영화 사운드 트랙으로 녹음된 것이다.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영화 Damage가 엄청나게 가위질 상영되어 분개하여 내한했던 일이 있다.)
누벨바그의 시초로도 평가되는 이 영화는 비교적 최근 EBS및 KBS위성을 통해 방영된 바 있으며, 비디오로도 출시되어있다.
사실 당시에는 단지 영화음악으로 쓰였을 뿐 정식 음반으로 출시되지 않았으나, 30년이 지난 1988년이 되어서야 complete recording이 나와 완전하게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음반은 59년 발표된 'Kind of Blue'라는 대작과 시기적으로 비슷하여, 사운드 또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Kind of Blue'와 더불어 이 시기 그의 음악적 양상을 살펴보는 데 참고하기 아주 좋은 음반이라 할 수 있다.
앨범의 녹음은 미리 계획되어있던 것이 아니라 루이 말 감독이 당시 유럽 투어중이던 마일즈 데이비스와 접촉을 가지게 되어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전 곡은 마일즈 데이비스의 작곡으로 표시되어있으며 그가 루이 말 감독과의 접촉 후 약 20일간의 유럽 투어중 구상한 것이다. 녹음에 걸린 시간은 단 4시간, 마일즈 데이비스는 즉흥적으로 모인 세션맨들과 간단한 의견 교환만을 거친 후 아직 목소리도 입혀지지 않은 필름을 스크리닝 하고서 녹음에 임했다.
아무리 즉흥적 session이었다고 하지만 당시 젊은 나이로서도 꽤 명성을 얻고 있었던 마일즈 데이비스였던 만큼, 앨범에 참여한 다른 뮤지션들 또한 프랑스에서는 제일 잘나가는 인물들이다. 특히 테너 섹소폰의 바니 월런은 그 특유의 서정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꽤 지명도 높은 뮤지션이다.
음반은 26개의 트랙으로 되어있으며, 제목은 영화의 내용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따라서 이 앨범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이 영화를 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나는 영화를 먼저 접하고 이 앨범을 구입했다. 당시로서는 젊었던 영화계와 재즈계의 두 거장의 이 운명적 만남은 결과적으로 대 성공이었다. 영화는 영화만으로도, 그리고 음악은 음악만으로도 각각 최고의 완성도를 보이고 있으며, 그 둘의 조합 또한 완벽 그 자체이다. 어찌나 영화와 잘 어울리는지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사운드는 황량하다. 어떤 면에서는 암울하기까지 하다. (영화 또한 그러하다.) 전체적으로 쿨 사운드로 일관하면서 음악은 인물들의 정서를 따라가고있다.
트럼펫 음색은 차갑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우울하고 서글픈 큐트 트럼펫은 말할 것도 없고, 뮤트 없이 나오는 소리 또한 가슴을 쑤신다. 베이스는 카메라의 시선을 대변하는 듯 냉랭하다. 시종일관 브러쉬를 사용하는 드럼은 영화의 흑백 톤과 같이 아무런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을 연주하고 있다.
처음의 세 트랙은 '샹젤리제의 밤 (Nuit sur les Champs-Elysees)'의 세가지 다른 take를 들려준다. 이것은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쟌느 모로 (Jeanne Morreau, 우리에게는 '쥴 앤 짐'의 여주인공으로 더 친숙하다.)의 테마라고 할 수 있다. 대사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은 그녀의 갈등과 불안을 대신 표현해주고 있다. 화면과 영상의 조화의 극치이다.
담배연기만이 자욱한 하루 밤 동안의 엘리베이터 속, 살인자의 불안과 초조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을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