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으로 돌아온 Metallica, 20년의 시간을 되돌리다.
2008-10-05
- 나는 Metallica의 진정한 팬인가?
특정 뮤지션을 좋아하고 지지하는데 있어 진정성을 따지는 것은, 어찌 보면 참 유치한 일이다. 그것은 단지 ‘좋으면 그만인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나 자신에게 이런 한심한 의문을 제기한 이유 또한 유치하다. ‘골수 팬들과는 조금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유달리 ‘Master Of Puppets’ 앨범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며, ‘Metallica’ 앨범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또한 ‘Load’와 ‘Reload’가 역겹지 아니하며, ‘St. Anger’가 한심하지도 않다. 학창시절, 다수의 팬이 그렇게도 욕을 해대던 ‘Load’ 앨범을 혼자 좋다며 듣고 다닐 때부터, 나는 이미 아웃사이더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 앨범 이후 나 또한 Metallica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CD장에는, 전설의 밴드 Led Zeppelin 옆에 Metallica의 CD가 진열되어 있다. 어찌하다 보니 모든 정규 앨범과 몇 개의 비 정규 앨범까지 제법 많이도 모여있다. CD들을 살펴보니 옛 생각이 난다. ‘… And Justice For All’ 앨범 같은 경우 최근 5년간 들은 기억이 없다. 다른 앨범들도 최근 몇 년간 자주 Play되지는 않았다. 최근 몇 년간 소홀했다는 증거다. Metallica에, 그리고 Heavy Metal에...
그리고 2008년, 그들의 신보 소식을 접하게 된다. 정규 앨범으로는 9집이며, 전작 ‘St. Anger’ 이후 5년만의 신작이다. 발매 전부터 신보 전체가 어둠의 경로를 통해 디지털 음원으로 공유되고 있었지만 보기 좋게 무시하고, 앨범 발매를 기다려 당일에 바로 CD를 구입했다. 그것도 CD의 포장지를 바로 뜯어 즐기는 쾌감을 위해 오프라인 음반 매장에서 말이다. 아직까지 이런 원초적 행위를 일삼는 것으로 보아 어설퍼도 Metallica의 팬이 맞아 보이긴 하다. 누가 물으면 골수 팬은 아니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말이다.
시작부터 진정성을 언급한 것은, 사실 이번 신작의 특성과도 연계되어 있다. 골수 팬들은 진정한 Metallica의 시대를 1980년대로 언급한다. 변절이라 여기던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초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요구가 끊임없었다. 그리고 Metallica는 거의 20년 만에 그 요구에 부응하고자 한다.
- 초심으로 돌아온 Metallica, 20년의 시간을 되돌리다.
예정보다 늦은 귀환이었다. 지난 2006년 8월 15일, 대한민국에서 광복절의 의미만큼이나 뜨거운 무대를 선사했던 그들의 신작을 곧 만나리라 기대했지만, 그 후 2년이란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사실 2006년의 내한 공연은 감동 이상의 우려를 낳기도 했다. 현장의 뜨거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들도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느껴야 했다. 특히 많은 부분을 관객들에 의지한 James의 보컬은 퇴조의 기미를 보였다. (일부에서는 그의 뱃살을 탓하기도!) 예전과 같은 긴장감이 덜했던 무대 매너와 맞물려 느슨하면서도 밋밋한 사운드의 신작이 탄생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다.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디지털 음원에 대한 민감한 반응으로 실추된 이미지도 음악으로 더 풀어야 했다. 그러나 미래는 밝아 보이지 않았다. 동시대를 호령했던 무수한 밴드들이 해산과 컴백을 반복했지만, 과거의 영광을 찾지 못하고 좌초한 시점에서도 굳건한 그들은 미미한 활동으로 그 자리가 위태로워 보인 것이다. 지난 5년의 공백은 유달리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전작 ‘St. Anger’는 나쁘지 않은 앨범이었지만, 긴 여운을 남기지 못했다.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안착했으며,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거친 본성을 드러냈지만 ‘탐탐’ 거리는 스네어 드럼이 팬들의 원성을 샀다. 결국 ‘분노의 깡통을 요란하게 흔드는 시끄러운 앨범’ 이란 오명을 쓰기도 했다.
그들은 고심할 수 밖에 없었다. 계속된 변화를 감행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었다. 유일한 대안은 아니었지만 ‘과거로의 귀환’은 그들에게 ‘비장의 카드’와도 같았다. 거칠면서도 ‘냉정함과 우아함’이 공존하던 그 시절로, 2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Death Magnetic’이란 타이틀의 아홉 번째 정규 앨범은 열 개의 곡을 수록하고 있다. 거의 모든 곡에서 그렇게 많은 팬들이 원하던 ‘과거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어 친밀감이 높다. 물론 근작에서 보여준 유연함도 잃지 않은 상태이지만, 포커스는 1980년대다. 오프닝으로 7분이 넘는 ‘That Was Just Your Life’를 배치하여 기선을 제압한다. 과거를 연상케 하는 긴장감 있는 출발을 보이는 이 곡은 모두가 기다렸던 특유의 사운드를 작렬한다. 이런 스피드와 리프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반가울 따름이다. 밴드는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끊임없는 질주를 이어간다. 이어지는 ‘The End Of The Line’은 더욱 육중한 사운드를 과시한다. 과거의 ‘Battery’ & ‘Master Of Puppets’나 ‘Enter Sandman’ & “Sad But True’와 같은 적절한 원 투 펀치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온 곡이기도 하다.
첫 싱글 ‘The Day That Never Comes’를 접한 팬들은 이구동성으로 ‘One’과 ‘Fade To Black’의 조합이라 외친다. 곡의 구성이나 리프, 심지어 러닝타임까지 흡사하여 혐의(?)를 쉽게 부정할 수 없을 정도다. 이 곡에 대한 솔직한 심경은, 식상하기 보다 반갑다는 것이다. 지난 2000년에 Bon Jovi가 5년만의 신곡으로 ‘Livin On A Prayer’를 답습한 ‘It’s My Life’을 공개했을 때도 많은 팬들이 환호했던 것을 상기해보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물론 환호 못지 않은 비판이 공존했다.)
정확히 8분간 Play되는 대곡 ‘The Judas Kiss’는 “Master Of Puppets’의 오프닝을 장식했던 ‘Battery’를 닮았다. 특히 가사를 내뱉는 템포가 매우 유사하다. 곡은 중반부를 넘어서부터 더욱 와일드하고 현란해진다. 긴 러닝타임의 곡이지만 파워와 템포를 거의 죽이지 않는다. ‘Broken Beat And Scarred’는 1990년대의 Metallica 사운드다. 특히 ‘Load’ 앨범에 실렸다면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 같다.
‘All Nightmare Long’은 전작 ‘St. Anger’의 스타일이다. 스네어 드럼만 등장했다면 그 앨범 수록 곡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보다 빠르고 매끄러운 질주를 보여준다. ‘Cyanide’는 보다 격렬하게 편곡된 ‘Enter Sandman’을 감상하는 기분이다. 과거와 현재의 사운드를 접목시킨 곡으로 90년대 사운드에 가장 가깝다. ‘The Unforgiven III’는 기존의 Unforgiven 시리즈와는 무관하지만, 분위기가 비슷해 저런 제목이 붙었다. 끊임없던 질주에 유일한 제동을 거는 발라드 형식의 곡이다.
‘''Suicide And Redemption''’은 무려 10분에 달하는 연주 곡이다. 실로 오랜만에 접하는 연주 곡이라 반가움이 크지만, Metallica다운 곡은 아니다. 특히 중반부의 솔로는 80년대에 맹활약하던 솔로 기타리스트들을 연상케 한다. ‘My Apocalypse’는 다른 곡들에 비해 짧고 공격적이다. 팬들이 선호할 스타일이지만 엔딩으로 자리잡는 것 보다 앨범 초반부에 배치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Death Magnetic’은 신선한 물건이 아니다. 리프나 구성의 식상함을 언급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반가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단지 좋았던 그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것. 오랫동안 활동하지 않던 밴드가 재 결성 공연을 펼칠 때, 많은 팬들이 전성기 시절 그 모습 그대로 돌아왔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가끔은 새삼스러운 것이 큰 기쁨이나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제임스 헷필드는 약 10년 전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우리가 80년대의 Led Zeppelin인지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아직 우리가 그 단계까지 올랐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우린 아직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Metallica는 아직 젊은 밴드이다.’ 지금도 유효하길 바라는 마음에 인용해보았다. 이제 50대를 바라보시는 ‘큰 형님들의 귀환’에 박수를, 이어질 행보에 응원을 보낸다.
written by 윤태호 (styx020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