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꿈과 환상, 짭짤한 눈물과 기억, 그 모든 것을 넘어..."
2009-06-21
부지런한 음악인들이 세상에 많기야 하다만 드림 시어터 만큼 높은 브랜드 지명도를 점하면서, 또 길고긴 월드 투어의 연속 속에서도 이 정도로 꾸준한 창작활동의 페이스를 보여주는 이들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6집부터 2년을 넘지 않는 연속적인 앨범 발매가 참으로 경이로운데, 팬으로서는 금방금방(?) 돌아오는 이들의 모습이 반갑기야 하지만, 어딘가 계속 2프로 모자라는 듯한 결과물에는 조금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 또한 사실. 6집 Six Degrees of Inner Turbulence에서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방만하고 장대한 구성들이 아쉬웠고, 7집에서는 Train of Thought 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삭막하고 심심한 감도 있었다. 8집 Octavarium에서는 남의 옷을 빌려입은 부자연스러운 몸동작이 안타까웠고, 9집 Systematic Chaos에서는 뻔하게 느껴지는 정형화가 불만점이었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 ''배부른 돼지'' 등의 표현으로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충분히 있을 만한 의견이라고도 생각했다. (물론 거기에 전혀 동의는 하지 않지만.) 그리고 드림 시어터는 로드러너로 몸을 옮긴 이후로 두번째인 이번 열번째 정규 앨범, Black Clouds & Silver Linings 을 내놓았다.
이번 앨범은 6집과 마찬가지로(?) 총 6곡을 수록하며, 이들 특유의 장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대곡들이 무려 네 곡이나 존재한다. 그리고 첫 싱글로 뽑힌 무난한(?) 전형적 후기 DT 스타일의 8분 짜리 곡 A Rite of Passage, 쉬어가는 중간 지점인 5분짜리 발라드 트랙 Wither, 이 두 곡을 제외하면 전곡이 10분을 상회하는 상황. 첫 곡은 무려 16분에 달하며, 클로징 트랙은 거의 20분에 육박한다. 여전하구나 하는 헛웃음과 함께 음반을 재생시키면 역시나 여전한 DT의 음악이 출력장치를 통해 흘러나와 대기를 진동시킨다.
내가 생각하는 드림 시어터의 가장 큰 강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점에 있다. 수많은 DT 안티들이 그들을 깔 때 말하는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이고 기교난발 지향적이라는 묘사와 다르게, 실제로 이들은 철저히 인간적이고 대중적인 코드를 통해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Six Degrees of Inner Turbulence의 장대한 피날레는 어떤가. Octavarium의 따스한 오케스트레이션은 또한 어땠는가. In the Name of God의 허밍은? 그 폭발의 순간들은 그것들 단독으로서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비판하는 그 변화무쌍한 전개의 하나의 파트로서 존재한다. DT의 음악은 청자가 기나긴 시간 동안의 여행을 따라가며 보편적인 무엇을 건드리는 힘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강한 설득력을 보유한다. 그들의 음악이 그렇게나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이라는 비판을 들어 마땅하다면, 대체 그 수많은 팬들과 넓은 지지층은 무엇을 통해 결집했단 말인가.
이게 이번 앨범에서는 더욱 바득바득 기를 써서 올라가지 못 했던 그 무엇을 향해 마침내 올라와 있다. 다른 말 할 것 없이 이번 앨범의 세 대곡을 보면 이야기가 끝나는 상황이다. 특히 첫 오프닝을 끊는 16분 대곡의 완벽한 구성을 보라. 9집의 In the Presence of Enemies를 보면 파트1의 명쾌함과 달리 파트2는 지리하고 진부한 전형적인 늘여놓기 헤비메탈 넘버였다. 그에 비교하면 A Nightmare to Remember는 짜임새가 튼튼하며 장대한 수미상관의 액자 안에서 질주감과 부유감, 야만적인 헤비함을 물 흐르듯 그 변화상을 잘 꿰어 맞추었다.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인생의 격랑을 겪는 한 남자(페트루치의 경험에 기반했다고.)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놓고 있다. 이전작들의 적절한 샘플링과도 같은 인상의 The Shattered Fortress를 지나면 후반기 앨범들보다는 보다 과거 앨범(혹자는 Awake를 거론한다)의 향취가 나는 The Best of Times와 The Count of Tuscany가 나온다. 포트노이가 아버지의 죽음 앞에 바친 The Best of Times는 전작의 The Ministry of Lost Souls와 같은 맥락의 감성적인 곡인데, 6집의 Solitary Shell의 감수성도 느껴지고, 세 번에 걸쳐 다른 형식으로 변주되는 메인 멜로디가 기가 막힌다. 특히 끝을 맺는 화려한 기타 솔로는 근작들에서의 깊이가 부족하게 느껴지던 것과는 격이 다르다. 핑크 플로이드나 러쉬의 향기를 강하게 맡을 수 있는 엔딩 트랙 The Count of Tuscany는 손에 익을 대로 익은 도인의 경지가 느껴지는 여유로운 곡 전개에서 무릎을 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곡을 시작하며 나오는 페트루치의 솔로나 루디스의 살가운 프록 향내의 키보드 플레잉 등은 ''아니, 이 맛은!''이란 만화에서나 볼 법한 감탄사를 뱉게 해주며, 약 절반을 넘어가면서 곡의 질주가 끝나는 시점부터 펼쳐지는 서정적인 연주부터는 이제 더 이상 비딱한 시선으로 하나하나 뜯어보고 뭐라 할 의욕을 꺾어놓는다. 꿈과 추억, 슬픔과 희망을 노래하는 가사와 함께 펼쳐지는 멜로디는 따스하기 그지없다.
그래, 이런 걸 원했다. 되도 않는 염병할 뮤즈 따라하기는 진절머리가 났었다. 이들의 본래 장기를 통해서 해낼 수 있는 그 무엇. 그걸 되찾았다. 잘했다. 정말 잘했다. 박수를 친다. 정말 원없이 박수를 치며 감동하고 있다.
09.06.21
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