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 서곡 작품집 (Beethoven: Symphony No.9 'Choral' & Overtures)[2CD]

Ernst Anserm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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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의 第 9番 交響曲"의 苦惱의 旋律에 對하여 2012-11-27
“Beethoven의 제 9번 교향곡”의 고뇌의 선율에 대하여
−제 1악장을 중심으로−
[스위스 로망드 관현악단/앙세르메 ; Decca]



주지하는 바와 같이 베토벤의 주제는 고뇌의 세계에서 환희의 세계를 겨냥한 영혼의 격렬한 몸부림이다. 베토벤은 그의 9개의 교향곡(6번은 제외, 6번 교향곡 “전원”은 변화무상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렸다)에서 고뇌의 세계를 다각도로 다루었고, 현악사중주(특히, 후기 현악사중주)에서는 고뇌의 세계 너머 인생고에서 해탈한 자신의 높은 정신세계의 경지를 환상과 몽환의 그윽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베토벤의 거의 모든 악상이 그러하듯 9번 교향곡에서도 남성적인 힘찬 정열이 넘쳐흐르고 있다. 베토벤은 그의 9개의 교향곡이나 현악사중주 등에서 자신이 안은 고뇌의 세계와 자신이 도달한 환희의 세계를 격한 감정으로(베토벤의 기질 탓이리라), 그 격한 감정을 낭만적인 멜로디로 승화시켜 리얼하게 표출하고 있다. 극도로 정제된 베토벤의 선율은 아름답고도 서정성이 짙어 처음 들어봐도 그렇게 거부감이 오지는 않는다. 베토벤의 대부분의 작품은 어렵지 않게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다. 베토벤의 작품은 딱딱한 철학서나, 윌리엄 포크너나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처럼 읽기가 어렵지는 않다.

베토벤의 최후의 교향곡이자, 그의 예술과 철학의 총결산인 제 9번 교향곡은 교향곡의 일반적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 9번 교향곡의 형식은 여타의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모두 4악장으로 되어 있지만(작곡가에 따라서는 1악장, 혹은 2, 3악장만으로 구성된 것도 있다), 내용면에서는 각 악장 간의 연관성이 여타의 교향곡(그의 8개의 교향곡을 포함해서)과는 사뭇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면서 악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9반 교향곡의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교향곡의 내용과 형식은 4개의 악장이 기․승․전․결의 구조로서 악장 간에 서로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진다. 제 1악장이 도입부라면, 제 4악장은 결론 부분으로 각 악장 간의 이음새가 자연스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는 교향곡도 그 악상의 흐름이 자연스러워 지금 전개되고 있는 부분이 제 몇 번째 악장인지 명확히 구별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다. 이것이 교향곡 악상 흐름에 대한 일반적 이해의 통례이다. 그런데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은 4개의 악장 중에 성악곡이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4개의 각 악장이 종래의 유연한 기승전결의 유대관계를 벗어나 서로 강한 독립성을 견지하고 있다.
9번 교향곡의 내용은, 인간 고뇌의 처절한 몸부림인 제 1악장, 고뇌에서 환희의 세계로 진입하는 제 2악장(2악장의 후반부는 카라얀의 지휘가 실감을 더해준다), 고뇌의 세계를 벗어나 도달한 환희의 동굴에서 모든 세대의 인류가 꿈꾸어 온 이상과 동경의 나라를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선율로 감미롭게 그린 제 3악장, 인류애를 호소하는 쉴러의 시에 곡을 붙인 환희의 송가인 제 4악장의 서로 다른 개성의 단편들이 모여 있는 셈이다. 이처럼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의 4개의 각 악장은 형식이나 내용면에서도 교향곡의 통념으로 보아서는 전체적인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 가운데서 6 번 교향곡을 제외한 나머지 8개의 교향곡에는 전악장이 고뇌의 음표로 가득 차 있는데, 그의 교향곡에 나타난 고뇌의 색채는 교향곡마다 개성과 특이성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고뇌를 인식한 그의 시야가 연륜과 시간의 추이에 따라 그 양상과 깊이에서 점차적으로 심층적인 변화가 왔음을 보여준다.
베토벤의 9 번 교향곡 제 1악장은 그 이전의 교향곡에 나타난 고뇌의 세계를 통할적으로 결집했을 뿐만 아니라, 보다 근원적으로 고뇌의 본질에 접근했고 마침내 인간의 고뇌를 이 세상 너머 우주의 차원으로까지 승화시켜 놓았음을 보여준다.

베토벤 고뇌의 철학이 가장 선명히 부각된 작품이 그의 9개의 교향곡 중에서도 제 3번 교향곡 Eroica와 제 9번 교향곡The Choral 이다.
고뇌의 늪에 매몰되어 세계에의 희망을 상실한, 침체된 우리의 정신을 승화된 고뇌의 바다로 접근시켜 거기에서 영혼의 드높은 상승을 꿰하는 제 3번 교향곡(비엔나 필/한스 이테르-쉬테트 ; Decca), 고뇌의 세계에서 환희의 세계를 갈망하는 인간정신 입지의 정점이라 할 제 9번 교향곡의 1∼3악장.
베토벤이 3번 교향곡에서는 고뇌의 세계에서 환희의 세계로의 도약을 굵은 선으로 개괄적으로 표출했다면, 9번 교향곡에서는 그 세계를 단편적으로 보다 정밀하게, 보다 밀도 있게 묘파하고 있다.
우주와 이 세상에 처한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mortal적 운명, 인간의 어둔 발자취를 중후하고도 폭넓은 식견으로 주시하며, 인간의 밝은 내일을 궁구하며, 인간 세상의 온갖 번뇌와 희망의 메시지를 동시에 아우르고 있으면서 시종이 여일하게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3번 교향곡은 철학성이나 예술적인 면에서도 9번 교향곡에 손색이 없다. 아니 교향곡 악곡의 형식과 예술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9번 교향곡을 능가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은 인류를 향한 거대한 논문이며, 그의 교향곡은 여타의 모든 교향곡의 Bible의 위치에 놓여 있다”고 한다. 베토벤은 그의 9개의 교향곡에다 자신의 정신(복낙원에의 의지)을 열정적으로 쏟아 부었다. 특히, 9번 교향곡 제 1악장에서 운명에 도전하는 인간의 정신, 고뇌를 극복하려는 강인한 인간의 의지를 그의 다른 어느 교향곡에서보다 더욱 심오한 미학으로 형상화하여 인간의 참담한 고뇌에 생명을 불어 넣었다.
베토벤은 9번 교향곡 제 1악장에서 이 세상의 번뇌와 고뇌의 신음을 사파의 사슬로부터 온전히 해방시켜 놓았다. 그 연유야 어떠하든 영혼이 창공을 활보하기 위해선 일체의 세상사에서 단절되어 있어야 했다. 형이상학적인 삶, 피안의 세계를 지향하기 위해선 인간의 정신은 세상적인 모든 것의 성향으로부터 변모되어야 했다. 그것이 비록 여하히 악한 감정이라 할지라도 우주의 극점에서는 포용될 수 있다는 믿음이 베토벤의 지론이며 그 철학의 집대성이 바로 9번 교향곡 제 1악장이다. 우리는 9번 교향곡 제 1악장의 선율 곳곳에서, 전체에서 그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고 감지할 수 있다. 세상이라는 모태의 두터운 자궁을 탈피하려는 피맺힌 절규의 신음과, 본체의 문을 두들기는 희망의 메시지를.
물이 대양을 향해 흐르면서 정화되듯 이 세상 우리 내부에서 발원한 고뇌의 긴 신음이 전인미답의 공간을 휘돌아 은하계의 가장자리로 이를 때쯤이면 인간의 고뇌는 어느새 생명에의 희망으로 변모되리라. 우주의 절대 공간으로 회귀한 감정은 이미 인간의 의식에서 벗어난 원초적인 우주의 생명인자로서 세상사와는 무관한 태고의 청정한 감정이다. (이상향의 세계에의 여정과 그 환희가 묘사된 부분이 2악장과 3악장이다)

9번 교향곡 제 1악장의 주제는 고뇌와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에 살면서 거기에 휘말린 영혼이 영원한 이상향을 꿈꾸며 울부짖는 애절한 몸부림이며, 안간힘으로 운명을 극복하려는 인간 영혼의 처절한 울음이며, 또한 고뇌를 극한 기도다. 방법과 선택에서 야기되는 인간의 고뇌, 인간 행위의 결과는 환희 아니면 고뇌다. 우리는 역사를 살면서 얼마나의 고뇌를 안고 있는가! 그 아무 것도 것 잡을 수 없는 죽음의 공간 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얼마나의 굴욕과 모멸을 당하고 있었던가!
우리가 베토벤의 고뇌의 선율을 들을 때면, 세계에 대한 그의 고뇌가 곧 나의 고뇌로 다가 온다. 보편성을 띈 그의 철학은 곧 전 인류의 정신을 대변해 주고 있기에.

베토벤은 제 9번 교향곡에서 고뇌의 세계에서 환희의 세계로 이를 수 있는 철학을 완성했으며, 환희의 세계 또한 유감없이 그려 내었다. 9번 교향곡 제 1악장의 고뇌의 철학은 죽음 앞에서 방황하며 신음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살아날 희망의 메시지를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Beethoven의 고뇌의 철학은 생활에 우롱당하며, 내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지리멸렬한 우리의 영혼에, 침체의 늪에 빠진 나의 정신에 날카로운 메스를 가해 준다.

9번 교향곡의 고뇌의 선율(제 1악장)을 들을 때면, 업에 매몰된 나의 희미한 고뇌가 오늘의 아픔으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죽음 앞에 선 절망의 인간 신음이 비로소 생에의 갈망으로 눈뜬다. 악성의 섬세하고도 예리한 칼날은 마침내 무딘 나의 신경조직을 건드려 펑 펑 피를 터뜨리고야만다. 지루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종과 횡으로 깊이를 더해 가며, 때로는 세계의 끝, 우주의 가장자리까지 넘나들며 외롭고 애절한 야성의 울부짖음으로 죽음의 골짜기를 헤매며 고뇌의 심연을 더듬고 또 더듬고 있는 악성의 강인한 정신역! 죽음의 운명에 결코 굴하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 그 심원한 Beethoven의 손길은 어둠의 세상에서 드높이 군림하고 있는 인간 오류의 대변자로서, 연약한 인간성을 옹호하는 거룩한 사제로서의 숭엄한 Requiem이리라.
어찌할 수 없이 참담한 고뇌의 늪에 빠져버린 가녀린 인간의 영혼, 일상의 언어로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죽음의 심연을 끝없이 맴돌고 또 맴돌며, 생명에의 실마리를 찾고 또 찾고 있는 강인하고도 집요한 악성의 집념! 업의 매듭을 추적하고 또 추적하며, 투명하고도 냉철한 이성의 눈으로 암울한 영혼의 바다를 넘나들고 또 넘나들 때마다, 고뇌로 점철된 굴곡진 영혼의 골짜기를 더듬고 또 더듬을 때마다, 구원자의 손길인가, 모든 세대의 인간 고뇌의 신음이 저 먼 은하계의 울음으로 변신하고 마는 신비로운 음의 조화! 연계된 음절음절이 빚어내고 창출해 내는, 절망과 생에의 의지가 처연히 어우러진 베토벤 고뇌와 번민의 절대 신음은 마침내 근원자의 심금을 울리고야 말리라. 번뇌의 절대치는 이미 번뇌가 아니다. 죽음을 애도하는 장송곡이 아니다. 구하는 자와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열린다는 복음서의 logos처럼 차안의 세계에서 절실하고 통절한 미학으로 승화된 인간의 감정에는 이미 자연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원초적인 생명력을 구가하는 존재 필연의 의지가 움트고 있다. 우주의 밤하늘에, 태고의 드높은 창공으로 솟음치고 있는 악성의 절대 고뇌의 선율에는 운명을 감싸 안고 소용돌이치는 희망의 뉘앙스가, 구원을 예견하는 부활의 메시지가 눈 덮인 빙하의 계곡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새싹처럼 우주의 근본 철리를 충분히 압도할 만한 강렬하고도 힘찬 저항의 포효가, 생명체 본연의 처연한 존재 의지가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미학으로 점철되어 표표히 우주 본체의 가장자리로 넘나든다.
극에 달한 인간의 감정은 그 어떠한 것이든 이미 대기권을 벗어났다면, 비록 절대자라 할지라도 감히 이를 내치지 못하리라. 악성의 위대한 철학적 영혼이 굴착해 낸 고뇌의 그 절대 공간에서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거듭날 수 있으리라. 광명한 신천지에의 지평을 열 수 있게 되리라.

Beethoven은 9번 교향곡 제 2악장에서는 이상의 세계로 연결된 무지개 빛 사다리를 딛고 천성으로 오르고 있는 정신의 실체와, 제 3악장에서는 이상향의 아름답고 황홀한 환상의 경지를 꿈꾸듯 감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이 세상 고뇌의 몸부림인 제 1악장과 천상의 세계인 제 3악장은 연주 시간이 16여 분으로 그 길이가 거의 같다.

전 생애를 바쳐 인간의 운명에 도전한 베토벤의 천재성은 인간의 고뇌를 순수를 극한 영혼의 신음으로 승화시켜 놓은데 있다. 세상의 온갖 탁류에 휩쓸린 인간의 영혼을 저 먼 은하계의 가장자리까지 몰고 간 것이다. 거기는 이미 세상의 치외법권에서 벗어난 우주의 절대 공간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오직 사∙물의 본질을 직시하며 형이상학에의 길을 걸을 수 있으리라. 우주의 근원자에게 궁극적 물음을 던질 수 있게 되리라. 그러한 실마리와 정서를 Beethoven은 그의 작품 곳곳에다 창출해 놓은 것이다. 이 사실이 바로 음악사에서, 인류의 정신사에서 Beethoven이 악성으로 추앙받으며 시대를 넘어 인구에 회자되는 소인이다. Beethoven은 고해 받은 사제가 신자에게 보속을 내려주듯 그렇게 인간의 고뇌와 번뇌에 ‘9번 교향곡 제 1악장’이라는 전대미문의 전무후무한 ‘생명의 철학’을 창출해 내었었다. 잡다한 암으로 얼룩진 세상의 어둔 영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베토벤의 위대한 예술 혼은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영원한 생명으로 빛을 발하리라.

Beethoven은 9번 교향곡 제 1악장에서 인간 고뇌의 심연을 무한대의 극점으로 응결시켜 거기에서 살아날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여실히 제시해 주고 있다. 사어{역사어}라고 할 수 있는 문학어가 아닌, 관현악단과 그 지휘자에 의해서 살아 숨쉬며 역동하고 있는 음의 미학으로서 인간 고뇌에 대한 자신의 절박한 신음을 우주의 그 누구에겐가 애절히, 통절히 호소하고 있다. Beethoven이 만인의 가슴에 절절히 토로하고 있는 신음이, 그 절망이 오늘 우리의 가슴에 와 닿고 있는가. 악성이 혼신의 힘으로 창출해낸 인간 고뇌의 심연, 그 절대의 절망적 신음의 여울 속에서 우리는 새 하늘의 빛을 일별할 수 있었던가. 인간 본연의 고뇌를 진정 인식하고 각성할 수 있었던가.
Beethoven의 신음은, 저주받은 세상에 만연한 인간의 통속적 울음이나 자기 회피적인 변명, 이반 카라마조프적인 반항이 아니다. 인간의 미숙한 행태, 인간의 자만심과 오만성에서 야기된 세상의 온갖 고뇌에 그의 독특한 종교 철학적 악상으로 신성을 부여한 절대의 신음이다. 그 절대의 신음으로서 인간의 고뇌는 본연의 자리에서 비로소 우주의 근원자와 맞설 수 있다. 인간의 괴로움이, 인간의 번민이 인간적인 것, 세상적인 모든 것에서 탈피한 순수의 감정일 때, 인간의 고뇌는 비로소 자연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본체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태초에 설정된 자연법에 복귀{회귀}할 수 있다. 태고의 청정한 본류에 얼굴을 내밀 수 있다. 그러한 고뇌의 철학적 미학을 Beethoven은 그의 9번 교향곡 제 1악장에서 창출해내었다.
Beethoven의 이 위대한 철학(9번 교향곡 제 1악장)은 세상의 인간에게 피를 토하며 외치고 있는 신의 사자 베토벤의 위대한 설교다. 인간의 사이비 근성에 경종을 울리는 냉엄한 설교다. 죽음에 처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 재생의 희망을 안겨주는 부활의 메시지다.
이상 기후에 시야가 막힌 가련한 영혼에, 세상의 탁류에 휩쓸려 눈먼 영혼에 그 본성을 일깨워주는 은총의 종소리다. 인간의 모든 괴로움과 고통, 번뇌는 진리에서 이탈했을 때 오는 것이지만, 철저한 회오(크리스트의 계시에서 비롯된 각성)를 통해서 그 고뇌를 절대의 감정으로 순화, 승화시킬 때, 그 어떤 인간의 죄과라 할지라도 소멸시킬 수 있다는{소멸될 수 있다는} 베토벤 소신의 설교다. 9번 교향곡 제 1악장은 세상을 살아야 하는 우리 인간에게는 때때로, 항상 울려야 할 영원한 복음서임에 틀림없으리라.

우리는 베토벤의 음악을 접할 때마다, 악성의 심오한 철학적 신음을 들을 때마다 의무적으로, 체면 치례적으로 고해야 하는 도식적 회오{고해성사}, 안이한 요식행위로서의 성사{영성체}를 통해서는 결코 바다 같이 넓은 영혼의 자유를 구가할 수 없었다는 당시의 Catholic 사회의 부조리한 정신적 상황을 감지할 수 있지 않을가.
18 세기 유럽의 교황 권위주의, 교황 지상주의 체제하에서 Catholic 교리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던 시대에 베토벤 같은 이단아의 출현은 진실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베토벤의 열화 같은 기질은 겉치례적이며 도식적인 교황 체제하의 현실을 수용할 수는 없었다. 혁명가다운 그의 예술적 기개는 노예적인 시대정신에 안착하거나 종속될 수도 없었다(베토벤의 청년기인 1789년에 프랑스에선 시민의 자유를 외치며 절대왕권에 반기를 든 대혁명이 일어났다). 베토벤의 이상은 세상에 있지 않았다. 형식적이며 가식적인 교황 체제하의 신앙(Catholic 교리는 보는 시각에 따라 견해가 다르겠지만, 현대 지성의 시각으로서는 미신적으로 보이는 요소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교황 무류설, 마리아 승천, 성탄 전야제 때의 아기 예수 인형에의 조배 등)에 순응하며, 세상의 이웃과 타협하고 문명의 발전에 일조하기도 하며 세속적인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닌, 자신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근원적인 힘에 이끌려 안이한 시대정신에서 벗어나려 했다. 본질적이며 보다 근원적인 시각으로 인생의 문제, 신앙의 문제를 해결하려 자기 자신의 고독과 처절히 싸우며 악상의 철학적 음율 조성에 투지를 불태웠다. 베토벤은 자신의 불우한 처지와 시대정신의 모순에 맞서 투쟁하며 자신의 예술적 의지와 입지를 관철(관철)시키기 위해 집요(집요)하게 몸부림치며 혼신의 힘으로 악상에 전념해왔다.(베토벤은 생애를 통해서 몇 차례나 연애를 시도했었지만, 본질적인 연애는 형이상학에의 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본질적인 연애, Platoic love는 연인의 미 너머의 세계를 추구한다).
경제적 어려움, 가족간의 갈등, 연애의 실패, 신병 등의 괴로움과 고통으로 수없이 담금질 당하고 수련된 베토벤의 영혼, 그 화염 같은 영혼에서 뿜어져 나온 Beethoven 음률의 철학과 미학은 그러기에 더욱 영롱한 빛으로 시대를 넘어 칼날 같이, 때로는 봄바람처럼 포근히 온 세상의 영혼을 휘감고 있는지 모른다. 악성의 위대한 음률은 세상을 꾸미는 일시적인 빛이 아닌, 피안의 세계를 지향하는 형이상학에의 영원한 빛으로 오늘 우리의 여린 가슴 속에서도 그 씨앗이 변함없이 태동하고 있다. 완전을 지향한 예술의 생명은 길다. Rudwig Van Beethoven 음악의 생명은 그의 철학 의지를 지탱해주는 예술적 미학에 있음은 다시 말할 필요 없으리라. 미는 존재 본연의 근본 원리로서 온갖 사․물의 기질과 양태에 생명력을 부과하는 근원적인 그 무엇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궁극적 지향 점(불완전한 인간 외의 생명체는 타고난 본질, 본능 그대로 향유되리라)은 자신의 내부에 깃든 완전에의 발현에 있다. (무생물은 그 나포자에 의해서 발현되리라)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교자 같은 Beethoven의 업적에 찬사와 경의를 표하며 외경의 마음으로 머리 숙이고 있는가!
자신의 괴로움, 자신의 고뇌를 포장지에 감싸서 저 하늘에 호소하고 싶은 자, 고뇌의 옷을 쉽사리 벗어던지고자 하는 자가 아니라면, 자신의 고뇌에서 깊은 해답을 얻고자 하는 자라면, 자신의 고뇌에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자라면 악성의 고뇌의 선율을 들어야 하리라.

수많은 베토벤의 지휘자 중에서도 나는 9번 교향곡의 지휘자로는 스위스 로망드 관현악단의 Ansermet를 첫 손가락으로 꼽는다. 앙세르메 지휘 음반은 내 첫사랑이기도 하다.
역사적 명연으로 알려진 푸르트벵글러의 지휘(Chor & Orchester der Bayreuther Festspiele/EMI)는 음원이 너무 좋지 않아 지금 우리가 듣기엔 베토벤의 미학을 손상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명지휘자로 알려진 토스카니니의 지휘(NBC SYMPHONY ORCHESTRA/RCA)는 템포가 너무 빨라 지극히 중요한 베토벤 고뇌의 철학을 크게 손상시겼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종횡무진으로 휘두르는 토스카니니의 지휘봉은 면도날처럼 예리하고 정확하지만, 마치 여우가 얼음 위에서 두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뛰며 춤추는 것을 연상시키는데, 이러한 지휘는 베토벤 9번 교향곡의 지휘로는 적절하지 못하다. 쿠벨릭의 9번 교향곡 지휘(바이에른 방송 관현악단/도이체 그라모폰)는 앙세르메의 지휘와 가락이 비슷하지만, 쿠벨릭의 지휘는 음절의 이음새가 힘이 없고 불분명 했다. 아바도의 지휘도 악보 자체에는 충실했을지 모르나 1악장의 경우 템포가 너무 빨라 Beethoven 철학을 재현하기에는 어불성설이리라. 토스카니니나 아바도의 1 악장 지휘는 앙세르메의 연주보다 3분여나 빠르다.
Ernest Ansermet의 9번 교향곡 지휘는(특히 제 1악장) 지극히 세밀하고도 정밀하며 템포도 베토벤 고뇌의 철학을 살리는데 적절했다. 앙세르메의 예리한 지휘봉은 극도로 정밀한 현미경 같이 Beethoven의 심원한 고뇌의 철학을 생생히, 의미 깊게, 생명력 있게 살려내고 있다. 앙세르메는 카라얀이나 첼리비다케처럼 즉흥적인 기분에 휘말림 없이(원작을 역자의 의도대로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밀도 짙게 베토벤의 철학을 리얼하게 표출해내고 있다. 앙세르메야 말로 진실로 베토벤의 고뇌의 철학을 살려낸 위대한 지휘자의 한 사람이리라.
< 2012. 11. 27/강대석(THOMAS AQUIN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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