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Twentysomething (Digipak) [홍보용 샘플반][CD]  

Jamie Cul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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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가 : 7,400원 1% 적립
  • 배급사 : Universal
  • 레이블 : Verve
  • 장르 : USED > 중고 CD > 재즈 > Vocal
  • 발매일 :  2004-04-25
  • 미디어 :  1CD
  • 수입여부 :  라이센스
  • 제조국 :  한국
  • 음반상태 : 디스크 상태 (A-) / 자켓 상태 (B-)
* 발송일은 타 상품과의 합산 주문, 음반사 및 택배사 일정에 따라 일부 변동될 수 있습니다.
Disc. 1
1. What A Difference A Day Made
2. These Are The Days
3. Singin' In The Rain
4. Twentysomething
5. But For Now
6. Old Devil Moon
7. I Could Have Danced All Night
8. Blame It On My Youth
9. I Get A Kick Out Of You
10. All At Sea
11. Wind Cries Mary
12. Lover, You Should Have Come Over
13. It's About Time
14. Next Year, Baby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보컬리스트, 반항기 가득한 인상적인 외모를 소유한 21세기를 대표할 재즈 아이돌 Jamie Cullum의 메이저 데뷔앨범.

- 유니버설 데뷔 앨범으로 영국 발매 5개월만에 80만장 판매

- UK차트 5위 진입, 재즈 아티스트로 유일하게 2004 브릿팝 어워드

노미네이트

- 영국 재즈 역사상 가장 높은 순위 데뷔, 가장 빨리 팔린 재즈앨범

- 50년대 뮤지컬 넘버부터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을 아우르는

폭넓은 해석능력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데일리 미러의 2003년 4월 25일자 기사의 제목과 서브타이틀이다. 백만 파운드라면 우리 돈으로 약 22억원. 컬럼의 통장으로 입금된 이 돈은 일반적인 팝계나 우리 가요계의 계약금 규모와 비교해 봐도 대서특필할 정도의 거액은 아니다. 하지만 데일리 미러를 포함해 영국의 신문과 TV, 라디오를 비롯한 거의 모든 미디어들이 이 내용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그 이유는 이 금액이 재즈에서는 일찍이 없었던 규모였고 더군다나 이 백만 파운드의 사나이가 당시로서는 일반 대중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던 신예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계약이 소니 뮤직과의 경쟁을 거쳐 세계 최고 재즈 레이블인 유니버설/버브와 맺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신데렐라의 탄생과 같은 이 이야기는 더욱 드라마틱한 모습을 띄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기껏해야 스톤헨지의 지방으로 알려져 있는 윌트셔 출신의 당시 나이 23살의 청년, 제이미 컬럼은 이렇게 등장했다. 계약 체결 즈음에도 컬럼은 늘 했던 것처럼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소호의 피자 가게에서 점심 시간을 맞아 연주하고 있었다. 첫 두 앨범을 자기 돈 1,600파운드로 제작했던 이 청년은 그야말로 하룻밤 사이에 마법처럼 재즈의 미래를 짊어질 인물로 다시 탄생한 것이다. 일반적인 재즈 앨범은 며칠 사이에(심지어는 단 하루에), 얼마 안 되는 비용으로 제작된다. 재즈계에서 이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늘 그렇게 해 왔으니까. 그러면 일급 프로듀서, 제대로 된 스튜디오, 전방위적인 프로모션 등등을 의미하는 대규모 계약을 제이미 컬럼 같은 신출내기가 체결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그는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제이미의 피아노 실력은 형편 없었다고 한다. 연습하는 걸 지독하게 싫어했으며 이론은 커녕 조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낙제를 경험했고 아예 학교를 그만 둔 적도 있다. 그 때 나이가 11살이었는데 대신 그의 주위는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이미가 태어나기 전, 그의 아버지는 '충격 (The Impacts)'이라는 이름의 가족 밴드를 이끌고 있었다. 어머니가 보컬, 아버지는 리듬 기타, 삼촌은 리드 기타, 할아버지는 색소폰, 이런 식으로 구성된 밴드는 동네 술집을 전전하면서 버트 바카라크, 비틀즈를 비롯한 60년대 팝 음악을 연주했다. “뭐, 음악적으로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밴드가 아니었대요, 생활비 벌려고 연주했다 더라고요.” 제이미의 말이다.

몇 년 뒤, 컬럼 가족이 에섹스에서 윌트셔로 이주하고 나서 그런지와 헤비 메틀에 심취해 있던 그의 형, 벤이 13번 째 생일 선물로 전기 기타를 선물 받았다. 1년도 안 되어 벤은 순전히 독학으로 포효하는 리프와 힘이 넘치는 코드를 배웠다. 어린 제이미는 록 그룹 너바나나 사운드가든을 형으로부터 소개 받았다. 기타를 좀 치는 것이 동네에서 잘 나가는 방법임을 깨닫게 되자 이들은 더욱 열심히 기타를 연습했고 실력이 늘어 축축 늘어지는 블루스도 연습하게 되었으며 당대의 기타 거장들을 하나 둘 공부해 나갔다. 제이미는 기타 교습을 받기도 했는데 기초부터 가르친다고 시절도 한참 지난 곡들을 연습 시키자 교습소에 바로 흥미를 잃었노라고 회고한다. 그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에디 밴 헤일런처럼 칠 수 있는가 였다.

밴 헤일런을 비롯한 여러 거장들의 연주를 연습하던 이들 형제는 부모가 모아 두었던 레코드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삼촌은 보사 노바를 가르쳐 주었는데 이들은 보사 노바의 분위기 보다는 코드에 더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듣게 된 것이 오스카 피터슨이었고 마일스 데이비스였다. 재즈의 매력에 한 번 빠져 들자 이들은 계속 재즈를 듣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제이미 컬럼은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다. LP로 들었던 재즈 연주자들에 반한 그는 이를 계기로 당시의 문화계 전반에 대한 탐험도 감행했다. 15살 어름에는 열정과 자유에 대한 추구로 가득 한 전후 세대의 모습을 그린 로 유명한 잭 키루액이나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읽기 시작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너무 조숙했던 것도 같고 너무 열심히 달려 들었던 것도 같다. 50년대 뉴욕 42번 가의 밤을 그린 것, 즉 새벽 6시까지 클럽에서 클럽으로 옮겨 다니며 연주하는 재즈 뮤지션의 이야기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다시 학교 생활을 하던 제이미는 드럼이나 베이스 사운드에 심취해 있는 또래들과 함께 밴드에서 키보드를 연주하기도 했다.

그의 재즈 사랑은 점점 더 깊어 갔다. 아마추어 딱지를 떼고 프로 재즈 뮤지션이 되는 것을 꿈 꾸며. 그리고 때가 되자 제이미는 윌트셔의 재즈 신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어 연주를 시작했다. 나이 60, 70이 된 재즈 뮤지션들과 어울리면서 그는 재즈를 피부로 체험한다. 또한 나이 든 프로들도 이 젊은이의 열정과 코드를 헷갈리는 미숙함 까지 좋아하게 되었다. 제이미는 교실이 아닌 밴드스탠드에서 음악을 배웠다. 많은 재즈 애호가들이 다른 무엇보다 정교한 테크닉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젊은이는 테크닉이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연주에 필요하다는 것과 목표로 삼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대학에서 영화와 영문학을 전공하게 된 컬럼은 작곡도 시작하여 과제물로 제작한 단편 영화에 자신의 음악을 삽입하기도 했다. 연주활동을 병행하면서 어느 날 오후에는 뚝딱 앨범 하나를 만들기도 했다. 란 제목의 이 앨범을 연주 현장에 들고 나가 장당 10파운드에 총 700장 팔았다. 이 돈과 융자 받은 학자금을 합쳐 앨범 하나를 더 만들었다. 이란 타이틀은 형이 만든 앨범 수록곡에서 따 온 것이다. 제이미는 이 제목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재즈를 한다니까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들, 즉 시내트라, 50년대, 빅 밴드, 기름 발라 넘긴 머리 같은 것에 대한 답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헤어 스타일은 또래의 머리 모양 그대로 였다.

이 앨범에는 제이미 컬럼의 자작곡 'I Wanna Be A Pop Star'도 들어 있다. 이 곡에는 잘 생긴 어린애들이 남의 도움을 받아, 춤 좀 추는 것을 무기로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되는 세태에 대한 좌절감과 실망을 담고 있다. 커버 버전도 있다. 명문 옥스포드를 나오고 'Creep'이란 노래로 유명한 라디오헤드의 'High And Dry'가 재즈 버전으로 수록된 것이다. 어려서 부터 듣던 곡, 그래서 제이미에게는 스탠다드와 마찬가지인 곡이다. 지미 헨드릭스 오리지널인 Wind Cries Mary도 같은 맥락이다. 기타리스트를 꿈 꾸던 그에게 이 곡은 12살 때부터 연습곡이었으며 피아노 연주에도 적합한 멜로디를 지니고 있다. 이 앨범은 캔디드(CANDID)란 작은 재즈 레이블에서 발매되었다. 그리고 메이저 음반사의 관심도 끌게 되었다. 각고의 8년 노력이 하룻밤 사이의 성공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여러 사람이 제이미 컬럼을 도왔다. 영국 토크 쇼의 일인자, 파킨슨이 을 듣고 2003년 초, 그의 쇼에 초대함으로써 이 젊은이는 방송을 타게 되었다. 찰스 왕세자가 이 쇼를 보고 5월에 세인트 제임스 왕궁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여왕 생일 잔치에 초대했다. 유명 코미디언, 영화배우 등과 함께 초대된 그는 여왕 앞에서 짤막한 촌극을 선보였다. 행사가 끝난 뒤, 그는 왕실의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그 중에는 비슷한 연배의 윌리엄 왕자도 있었는데 이들의 화제는 테크노나 록과 같은 것이었을 게다. 실제로 제이미는 재즈 외의 음악 작업에도 참여한다. 이제는 해체된 록 그룹, 택시의 하이드 파크 공연에 키보디스트로 참여한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앞으로도 그는 세션 뮤지션이건, 아니면 그 이상의 역할로 이와 같은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런 활동은 저의 재즈 연주에도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어 주거든요.”

2003년 10월, 제이미 컬럼은 뉴욕의 앨곤퀸 호텔에서 3주간 공연을 하게 되었다. 맨해튼 44번 가에 위치한 이 호텔은 가장 뛰어난 미국의 10대 역사적 호텔의 하나로 인정 받고 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오크 룸에서 주말을 빼고 매일 펼쳐지는 재즈 공연과 화려한 저녁식사는 미국 상류 문화의 상징이 되었을 정도다. 본 공연을(하루 저녁에 두 번의 공연이 벌어진다. 음악에 집중하는 본 공연, 술과 담소를 즐기는 가운데 배경음악처럼 펼쳐지는 작은 공연) 미국 재즈 뮤지션이 아닌 이가 맡은 것은 이 호텔의 100년 넘는 역사에서 제이미가 최초였다. 늘 뉴욕 공연을 꿈 꿔 왔던 제이미였지만 별로 긴장하지는 않았다. 15살적부터 연주 무대에 섰던 제이미 컬럼은 이미 1,000회 이상의 연주를 소화한 상태였다. 규모의 크고 작음, 록이냐 재즈냐, 청중이 맥주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젊은이냐 정장을 쭉 빼 입은 신사, 숙녀냐 하는 것은 그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의 음악을 듣는 이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야 말로 바로 그의 천직이었던 것이다. 분위기에 맞는 옷을 입고(때로는 분위기를 주도하기 위한 연출의 옷도 입고), 청중에게 농담을 던지고, 점잖은 피아니스트라면 결코 하지 않을 피아노 두들기기(I Could Have Danced All Night 도입부의 리듬은 바로 이 소리다)와 같은 그가 무대 위에서 선사하는 모든 것들은 제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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