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Accelerated Evolution [CD]

Devin Towns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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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합일을 통해 변화를 지향한 데빈의 역작
[Accelerated Evolution]
-Opening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예술에 있어 복제가 불가능한 독특한 분위기를 ‘아우라'라고 정의했다. 이것은 예술의 원형을 복제한 영화나 CD등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라 설명되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복제된 결과물에서도 이 ‘아우라' 를 느끼는 데는 큰 무리가 없어보인다. 데빈의 신작을 듣고 있는 지금, 비록 스튜디오에서 한차례 걸러져 녹음되어 대량으로 찍혀나온 작은 음반 한장에 불과하지만 그가 표현해내는 음악에 엄청난 경외감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Devin....
Devin Townsend, 그의 경력을 훑어보면 절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스트래핑 영 래드(Strapping Young Lad(이하 SYL))와 솔로 프로젝트를 오가며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하거나 치중하지 않은 뮤지션으로써의 비범함. 자신의 앨범은 물론이고 소일워크(Soilwork), 스턱 모조(Stuck Mojo), 램 오브 갓(Lamb Of God) 등 헤비씬 정복을 위해 땀을 흘리는 밴드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프로듀서로써의 탁월함. 음악활동을 거듭할수록 주위의 동료들과 팬들을 사로잡아 버리는 특유의 카리스마.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에 이만한 캐리어를 쌓은 것을 보면(물론 본인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겠지만) 그를 거론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곤 하는 ‘천재' 라는 단어는 결코 부당한 수식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천재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다. 특정 분야에서 감히 남들이 꿈꾸지 못한 세계를 일궈내거나, 넘치는 끼와 다재다능함으로 수많은 영역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그것이다. 데빈은 전자의 유형에서 한걸음 나아가 한 우물을 다양하게 파고 들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깊이를 측정할 수 없는 데빈의 우물은 마치 숭늉을 내놓으라 해도 바로 떠줄 수 있을 듯한 독특함과 창조력, 패기로 언제나 넘실거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심이 깊어만 가는 데빈의 음악세계를 시간이 지나기 전에 한번 간단히 살펴보자.

- Devin's World
데빈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서양나이로 19살이 되었을 무렵 스티브 바이(Steve Vai)의 앨범 [Sex & Religion]에서 충격적인 보컬을 선보이며 세상에 처음 자신을 드러냈다. 좋은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워낙에 시대를 대표하는 기타의 거장이 전면에 부각된 앨범이었던 터라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는 얼마 후 제임스 머피(James Muphy)의 솔로앨범과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트리뷰트 앨범 등에서의 의욕적인 활동을 통해 점진적으로 음악인으로써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해갔다. 음지에서 활동하며 양지를 꿈꾸던 그는 95년에 이르러 SYL이라는 날개를 달고 힘찬 도약을 시작했는데 데뷔 앨범 [Heavy As A Really Heavy Thing]에서 선보인 가공할 사운드는 지금 들어도 충격적이다. 2집 [City]와 최근 발표한 3집 [SYL]까지 세상이 담고 있는 온갖 부조리와 병폐에 던지는 신랄한 비판과 그에 걸맞는 극단적인 헤비니스 사운드의 절묘한 융합을 보여줬다. 특히나 고루함을 찾아볼 수 없는 번뜩이는 감각이 빚어낸 독특한 곡 전개는 익스트림은 거기서 거기라는 어리석은 판단을 단칼에 종식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SYL이 공격적인 본능을 일깨우는 섬뜩한 회칼이었다면 새로운 영역확장의 결과물인 솔로 프로젝트는 보다 정제되고 세밀한 감정에 치중하는 면도날과도 같았다. 97년 평단과 뮤지션들의 격찬속에 태어난 또 다른 성격의 데뷔작 [Ocean Machine: :Biomech]는 헤비함을 잃지 않는 가운데 다양한 실험적 요소들을 도입하며 자신의 의식 속에 담겨있는 음악적 고뇌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작품이었다. 그 뒤 잇달아 발표한 연작 [Infinity], [Physicist], [Terria]는 어느 하나 쳐지는 작품 없이 고른 완성도를 띄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으며 데빈이라는 존재를 부각시킨 앨범 [Terria]는 그 중에서도 압권이라 할 만하다. 이 앨범은 지금도 높은 인기를 과시하며, 메틀의 미래를 확실하게 제시했다는 찬사를 얻고 있는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수의 프로그레시브 메틀 밴드들에 하등 뒤질 것 없는 탄탄한 컨셉과, 장대한 시놉시스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는 변화무쌍한 곡 구성은 앨범을 한번 걸어놓으면 도저히 끊을 수 없도록 만든다.

SYL과 솔로 프로젝트라는 양날의 칼을 자유자재로 휘둘러온 데빈이지만, [Terria]의 놀라운 음악적 성과는 분명 부담으로 작용했을 듯 싶다. 호재가 악재로도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밴드로 전작들과의 차별성을 두며 일종의 새출발을 감행했다. Brian Waddell (guitar) Ryan van Poederooyen (drums) Mike Youg (bass) Dave Young (keyboards) 등 4명의 새로운 멤버를 보강하여 완벽한 5인조 편성을 갖춘 모습으로 내놓은 신보는 더 이상 데빈의 솔로앨범이 아닌 공식적인 데빈 타운젠드 밴드의 첫번째 앨범이 되겠다. 그렇다면 결과는? 앨범이 발매된 시점으로부터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현재까지는 찬사의 비율이 편파적일정도로 비판을 압도하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Accelerated Evolution]의 세계로 속도를 높여 들어가보자.

- Devin's Evolution!
음반 감상에서 선험적 수단으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자켓이다. MP3를 거론하는 이도 있겠지만 앨범단위로써의 ‘제대로 된' 감상을 하는 입장에서는 분명 그렇다.
각각의 크기를 달리하는 원형 금속들, 그 중심을 가로지르는 무지개빛 광선의 움직임. 금속으로 대변되는 메틀이 다양성과 희망을 나타내는 무지개를 만나 보다 새로운 내용물이 담겨있으리라는 생각은 지나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음반을 플레이시키면 과히 예측이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육중한 기타리프로 포문을 여는 ‘Depth Charge'는 헤드뱅잉에 알맞은 적당한 빠르기를 지닌 곡으로, 오프닝으로써 손색이 없는 넘버다. SYL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밝고 경쾌(?)하기까지 한 느낌을 주는데 어떤 파트보다도 놀라움을 주는 것은 다름아닌 데빈의 보컬실력이다. 예전 스티브 바이 앨범에서부터 최근까지 보여줬던 자신의 보컬세계를 집결해놓은 듯 변화무쌍한 운신의 폭을 자랑하는 솜씨는 동급 최강이 아닌가 싶다. 청자의 감성을 살포시 흔들어 놓는 ‘Storm'은 제목이 말하듯 차분하게 시작해서 휘몰아치다 이내 사그라드는 진행을 보여준다. 앨범의 색깔을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는 ‘Random Analysis'는 변화무쌍한 전개속에서 인상적인 코러스 라인이 펼쳐지는데, 전반적으로 헤비하면서도 매우 몽환적이다. 부유하는 사운드의 파도 속에 몸을 던진 듯한 슬로우 템포의 ‘Deadhead'는 섬찟함과 포근함이 공존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무서운 집중력을 내포한다. 이어지는 ‘Suicide'에서도 이러한 정서는 계속되는데, -Keep It Inside Boy-, -Ten Thousand Lies-를 외치는 데빈의 일갈은 적막한 하늘에 치는 벼락처럼 지축을 흔든다. 팝 메틀적 요소를 차용해 편안한 느낌을 주는 ‘Traveller'를 지나면, 데빈의 물 흐르듯 매끄러운 기타 솜씨를 만끽할 수 있는 ‘Away'가 차분한 감동을 전한다. 기타로 훑어내는 감성적인 멜로디 라인과 포근한 보컬이 조우한 ‘Sunday Afternoon'은 나른한 일요일 오후의 확실한 선택(?)이 될 수 있겠다. 벌써 마지막 곡인가! 하는 탄식을 내뱉기도 전에 귀를 감싸오는 매력적인 트랙 ‘Slow Me Down'은 명징하고 뚜렷한 전개로 인해 흡사 미국 메이저씬에서 활동하는 밴드의 곡이 아닐까 할 정도인데, 그만큼 데빈의 음악적 영역이 확장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Accelerated Evolution]는 데빈 타운젠드의 디스코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팝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평범하거나 단조롭다거나 대중성이라는 함정에 빠진 앨범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21세기 음악의 중요한 생존전략 중 하나는 다양한 음악요소의 수용이다. 단 이런 수용과정에서 굳건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작업은 필수적일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데빈의 시도는 매우 긍정적이다. 외적으로는 팝과 익스트림이라는 가깝고도 먼 장르간의 합일을 실천하고, 내적으로는 그간 펼쳐보였던 음악적 여정을 포괄하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이번 신보는 데빈이 십여년간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인 헤비메틀 대백과사전의 ‘콘사이스형 개정 증보판'이 될 것이다.

- 글 / 윤형근 (rpm3313@imus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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