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슴 속 보편적인 마음을 달래는 노래"
2009-03-20
한 해가 다 지나가기 전, 그림자가 길어지고 밤이 추워지는 무렵, 그 때, 브로콜리 너마저의 앨범이 나왔다. 한 해가 지났다. 다시 반복된 브로콜리의 순환선. EP와는 약 일년의 텀을 두고 발매된 정규 일집. 그 때든 이번이든 내가 접했을 때는 결국 이미 한 해가 넘어간 뒤였을 따름. 그렇게 08년도 09년도 2월은 내게 브로콜리의 달이 되고야 말았다.
2008년도 후반기에 장기하가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의 산실, 붕가붕가 레코드를 먹여살렸다면, 이미 그 해 전반기에 폭풍을 일으켰던 ''브로콜리 너마저''의 존재감 또한 실로 가볍지 않다. 청춘의 애달픔, 눈물에 젖은 향기가 모락모락 나는 편지지 같은 노래를 선보이는 이들은 장기하의 기인스런 느낌으로 인한 흥행과는 다른, 보편적인 음악인의 방식으로 홍대 음악계의 화제거리가 되었다. 그래도 붕가붕가 레코드의 소속된 수많은 음악인들 중 그나마 가장 ''음악이 진지한'' 구석이 있어보였던(과거형 주의!) 이들도 사실, 그 젊음과 궁상맞음의 찌질함은 어느 정도 공통분모로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다. 하여간 브로콜리 너마저의 그 유명한 EP ''앵콜요청금지''의 대흥행 이후, ''수공업 소형 음반''의 일환이자 데모반 재발매 격인 싱글 ''꾸꾸꾸''가 있었고, 그리고 그로부터 약 반년 후에 이 첫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정규앨범, ''보편적인 노래''가 발매되었다. 그리고 이전의 EP의 흥행을 무시하는 기록적인 성과(일만장은 가뿐히 넘어버린!)를 보여주며, 그 이름값을 만인에게 선전하였다.
EP가 가진 매력의 제일은 뭐니뭐니 해도 술먹고 골방에서 속삭이듯 다가오는 저렴한(...) 사운드에 있었다고 보는 바, 정규작의 말끔하고 큰 볼륨으로 나올 후속작에 대해 내심 기대 반 우려 반, 가슴은 두근 반 세근 반이었다. 하지만 다행이랄까, 전작보다 말끔해지고 세련되게 변한 건 사실이지만, 그 변화가 이들 본연의 매력을 죽이는 정도로 심하게 조미료를 친 정도는 아니다. 이들의 특기인 살인적 감수성이 절절한 ''춤'', ''편지'', 실연의 상실감을 밝고 동화적인 분위기로 승화시키는 킬링 넘버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싱글 꾸꾸꾸에 수록되기도 했던 댄스록 ''봄이 오면'', 이전의 감수성을 간직하며 보다 발전된 작곡이 매력적인 ''속좁은 여학생'', ''2009년의 우리들'', EP에서 선보였을 때부터 치사량의 공격력을 보유한 곡들인 ''말'', ''안녕'', ''앵콜요청금지''도 여전하다. 거기에 이 앨범의 존재의의를 200% 끌어올리는 최강의 곡, ''보편적인 노래''에 이르면 정말 할말이 없어지며 다시금 재생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는 중독 상태에 접어들 뿐. (개인적으로 2008년에 들은 모든 노래 중 최강으로 꼽는다.)
감성에 호소하는 소박한 모던락의 구조를 갖춘 이들의 매력요소를 폭발시키는 주력 화기는 절륜한 호소력을 갖춘 여성 보컬 ''계피''의 능력임이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명확하다고 보는데, 안타깝게도 이제는 더이상 밴드에 그녀가 발을 두고 있지 않다. 그 절대적인 존재감이 어찌 보면 밴드의 발을 묶어둘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나름 생각해보는 건, 이미 떠나가버린 사람에 대한 미련을 갖지 않으려는 일종의 자기 위안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더거''의 내공이 보다 커진 캔버스에서도 무리 없이 발휘된 것을 감안하면 올 4월에 나온다는 ''잔인한 4월'' 데모를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사실, 뭣보다 이들의 활동중단이 오래 가지 않았다는 것, 아니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울먹거리게 기쁠 따름이다. 아, 제기, 샤워하고 나와서 또 한번 돌려볼까.
9/10
2009.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