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잉으로 치닫지 않는 적절함
2010-06-04
EP의 포문을 여는 <알아>부터 마지막 트랙 <노을>까지, 우리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경우는 없겠다. 양창근은 시종 좋은 멜로디를 밝은 표정으로, 살가운 스트로크에 맞추어 불러 나간다. 노랫말은 또한 어떠한가; "기억해 나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네 얼굴을 / 떨리던 내 가슴을 / 알아 다신 돌아오지 않을걸 / 우리 함께했던 시간도 / 날 떠나버린 네 마음도"(<알아>)라든지, "우산 하나를 둘이 쓰려니 / 자리는 당연히 좁을 수밖에 / 비를 맞는걸 싫어하는 넌 내곁으로 몸을 붙여 / 함께 비를 피했지"(<겨울비>)라고. 전형적인 사춘기 소년의 아기자기한 감성. 그렇다. 그 전형을 양창근은 모범생처럼 잘 따른다. 모범생처럼 잘 뽑아낸 멜로디, 감정의 과잉으로 치닫지 않고 적절할 때 컷 하는 센스, 소박하면서도 단정한 어레인지. 여기까지는 모두, 전형에 속한다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어떤 이는 또 동어반복인가, 라며 툴툴댈지도 모르겠다. 근거 없는 툴툴거림은 아니겠지. 클리셰란 본디 지루함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니. 그러나 EP를 찬찬히 감상할 때 드는 기분은 ''지루함''보다는 ''(그럼에도) 신선함''에 가깝다. 범람하는, 정확히는 범람했던 예의 그 지루했던 클리셰들에 비하여 양창근의 작업은 신선하다. 이를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어떠한 악기가 쓰였거나, 쓰이지 않았거나, 노래의 작법이 다르거나, 이런 종류의 차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아주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에 가깝다. 단서는? 이를테면 <알아>에서 살짝 불안해 보이는 하모니라든지, <겨울비>에서 다소 부족해 보이는 호흡이라든지, <조금 힘드네요>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는 가성 같은 것들, 말하자면 결정적이라기보다는 되려 아주 작고 초라한 것들이다. 좋은 레코딩 장비를 갖추지 못하여, 여유 있게 테이크를 가지 않아, 혹은 다소간은 양창근 본인의 역량 부족으로 생기는 이런 종류의 미미한 ''노이즈''들은 그 자신의 곤궁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어, 오히려 ''진솔함''으로 다가온다. 요컨대, 전형의 덫을 잘 헤쳐 나온다. ''소년적인 감성에 소구하는 포지셔닝''이 아닌 ''소년 그 자체''의 음성으로 노래하기에 양창근의 [겨울비]는 신선하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원형(元型)을 만나는 듯하다. 이는 참 기분 좋아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