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노래가 있었다. 저 아득하게 먼 옛날,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게 토해내던 어떤 흥얼거림, 몸짓과 소리의 덩어리, 그것을 노래라 부를 수 있다면, 거기에서 말이 시작되고 시가 나왔다. 포크(Folk)는 바로 그런 노래의 원초적인 형식에 가장 가까운 장르다. 포크에서 중요한 것은 악기와 사운드, 음악적 스타일이 아니라 바로 그 속에 담긴 언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사람은 이야기 속에서 살고 이야기를 통해 정체성을 구성하며 자신을 표현하고 타자와 관계를 맺는다. 삶은 이야기의 연쇄이고 노래는 그 이야기를 담는 가장 중요한 그릇 가운데 하나다. 정태춘의 노래는 바로 그런 노래의 원형적 모습을 잘 보여주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포크다운 음악이다. 그가 오랫동안 음유시인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2012) 이후 무려 13년이 훌쩍 지나 새롭게 내놓는 정태춘-박은옥의 새 앨범 <집중호우 사이>는 세상을 응시하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시적 울림으로 그려내는 정태춘 음악의 특질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는 마치 카메라 같은 시선으로 그가 목격한 세상의 다양한 풍경들을 읽어낸다. 세상을 대하는 그 카메라는 한층 깊어지고 더욱 농밀해졌다. 언뜻 하찮아 보이는 눈앞의 풍경은 그의 조용한 읊조림 속에서 음악적 상상력과 결합하며, 여러 시간과 공간의 층위로 확장된다. 해 질 녘 들판을 날아가는 기러기(<기러기>)는 무슨 이유에선지 아직 돌아오지 않는 소년의 이야기로 연결되고, 산길 끝에 서 있는 '길이 없습니다'라 쓰인 작은 간판(<도리 강변에서>)은, 모두 떠나고 남은 이 없는 어느 강변의 어둠으로 확장된다. 생선구이 집 쪽창에 붙박인 작은 범선의 그림(<나의 범선들은 도시를 떠났다>)은 불모의 시멘트와 아스팔트, 도시의 메마른 숲으로 이어진다.
그 노래들이 그려내는 풍경은 대체로 어딘가 황량하고 쓸쓸하다. 거기에는 늘 잃어버린, 혹은 사라진, 그래서 문득 아쉽고 허전한 유토피아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40여 년 전 처음 음악의 길을 들어섰을 때부터 그는 언제나 잃어버린 고향, 누군가에게 빼앗긴 유토피아를 이야기해 왔고, 이를 되찾기 위한 싸움에 주저 없이 뛰어들어 거리를 누비는 투사의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칠순을 넘긴 시점에도 세상을 응시하는 정태춘의 시선은 여전히 낮고 여린 곳, 무너지고 밟히고 사라진 곳을 향해 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단지 현실의 황량함에 머물지 않는다. 그 속에는, 전쟁 같은 장마의 포성이 사라지고 나면 간지러운 햇살을 맞을 준비를 하는 어린 농게들(<집중호우 사이>)이 있고, 봄날은 오래 머물지 않고 누군가 떠나지만 또 다른 누군가가 다시 오며(<하동 언덕 매화 놀이>), 세상에 눈물이 넘쳐도 저녁 숲으로 돌아오는 붉은 동백(<폭설, 동백의 노래>)이 있고, 노랗게 피었다 꿈같은 씨앗 되어 세상으로 흩어지는 민들레(<민들레 시집>)의 희망이 있다.
노래는 본디 시와 음악의 결합이지만 대체로 대중음악의 역사는 노래의 시적 차원이 점차 약화되고 감각적인 사운드와 리듬의 육체성이 더욱 강화되어 온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부터 시적 정취를 강하게 띄고 있던 정태춘의 노래는 그 문학적 지향이 강력한 음악적 질감을 만들어낸 희귀한 사례에 속한다. 그의 창작은 늘 음악적 욕망보다 언어 혹은 문학적 표현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되어왔다.
이번 새 앨범은 이른바 상업적 대중음악을 둘러싼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그의 문학적 욕망이 가장 자유롭게, 집중적으로 발현된 작업의 결과물이다. 음악과 사운드는 가수의 목소리를 가리지 않도록 최대한 절제되며 노랫말의 문학적 질감을 도드라지게 하는 딱 그 지점까지 작동한다. 그렇다고 음악적으로 단순하다는 뜻은 아니다. 포크의 기반 위에서 록과 팝, 트로트의 요소까지 다양하게 동원된 음악적 자원들은 그의 노래가 늘 그렇듯 노랫말에 적절하게 어우러지면서 아름답게 공명한다.
그렇기에 이 노래들은 그저 흘러가는 소리에 감각적으로 몸을 맡기는 방식이 아니라 노래와 함께 가사를 음미하며 그가 그려내는 풍경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되풀이 생각해야만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사운드와 리듬에 육체적으로 반응하며 감각적 즐거움을 찾는 요즘 대중음악의 일반적인 청취 방식으로 그의 노래가 가진 그 깊이와 질감을 제대로 느끼기는 어렵다. 그러고 보면 정태춘은 이번 앨범을 통해또 하나 묵직한 사회적 발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물질적 감각과 자극, 직설적이고 즉각적인 욕망의 추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세상에서, 시적 성찰과 사유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노래가 가진 가장 원초적인 의미를 새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__김창남 (성공회대 명예교수)
한국 대중가요가 이룩한 최고의 문학적 성취
밥 딜런이 "위대한 미국 노래의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했다면, 정태춘은 한국적 포크 음악의 영역에서 누구도 도달하지 못할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왔다. 그중에서도 이번 12집 음반 <<집중호우 사이>>는 지금까지 한국 대중가요가 이룩한 최고의 문학적 성취이다. 이 음반을 준비하기 전에 정태춘은 사석에서 "그간 한국 문학에 진 빚을 갚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음반은 한국 문학에 진 빚을 갚는 수준을 넘어서서 한국 문학에 더해진 또 하나의 탁월한 문학적 성과이다.
대중문화의 힘은 그것이 현실과 맺는 '직접적인' 관계에 있다. 결핍의 현실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대중-주체들의 정서를 꾸밈없이 자극하고 대변하는 것이야말로 대중문화가 갖고 있는 매혹의 힘이다. 대중문화는 때로 지배 이데올로기 재생산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자본의 환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유토피아 욕망의 무의식적 표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것은 불덩이처럼 뜨겁고 아프고 허황되며 진실하다." 정태춘의 음악은 이 "뜨겁고 아프고 허황되며 진실한" 매체가 (시스템에 저항하는) '자율적'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이다.
정태춘의 노래에는 (루카치 G. Lukacs 식으로 말하면) '사라진 총체성'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존재한다. 루카치가 말했던 대로 '우리의 모든 갈 길을 비추어주던 하늘의 별빛'은 사라진 지 오래다. 정태춘에게 있어서 상징적 '고향'은 가난하지만 공동체가 살아 있는 유토피아이고, 그것을 상실한 현재의 공간은 일종의 디스토피아이다. 말하자면, 그는 디스토피아에 버려진 유토피아니스트이다. 이번 음반에서도 소멸되어 가는 것, 사라진 공동체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이 흥건하다. 고향의 서사에서 사라진 "소년"(<기러기>) 아득히 멀어지는, 고뇌가 어려있던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도리 강변에서>), 도시를 떠나 "유년의 바다"로 간 사람(<나의 범선들은 도시를 떠났다>), 안데스에서 쫒겨나 낯선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잃어버린 낙원의 신화"를 부르고 있는 사람들(<엘도라도는 어디>)은 모두 사라진 '근원'에 대한 뼈아픈 그리움의 상징들이다. 이렇게 보면 정태춘의 세계는 자본 지배의 세상에서 이제는 사라져 어디에도 없는 상상의 공동체를 찾아가는, 뿌리 뽑힌 자의 '오디세이아'이다.
__ 오민석 (단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