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작업자의 다정한 강단: 《안희수 노래 모음집》
/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성실이 예술가의 미덕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건 체감상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특히 예술 계통의 창작자는 세상이 정한 기준이나 틀에서 멀리 벗어나 있으면 있을수록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여러모로 비난받을 행동을 거침없이 하고, 모두가 주저하는 날카로운 말을 쉽게 내뱉는 사람들. 세상의 돌연변이이자 이단아로 환호만큼이나 손가락질도 받기 일쑤였던 이들은 그러나 어제 같은 오늘과 오늘 같은 내일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선함, 나아가 해방감으로 다가갔다. 그런 반골 기질이 뿌리 깊으면 깊을수록 진정성도 인정받았다.
그런 예술계의 오랜 습속을 생각하면 싱어송라이터 안희수는 뭐랄까, 예술가나 진정성이라는 단어 앞에서 한결같이 머쓱한 표정만 지을 것 같은 인물이다. 그의 음악 인생에 특별하거나 타고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재능에 어쩔 수 없이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거나, 먼 하늘 어딘가에서 계시처럼 들려온 소리로 가사와 멜로디를 길어 올린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무역회사 직원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20대 후반의 어느 날 '노래하는 목소리가 좋다'는 동료의 칭찬에 문득 음악이 하고 싶어진, 그 갑작스러운 충동이 지금의 안희수를 만들었다. 인디 가수로서 활동하려면 자작곡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기타로 코드를 짚고, 거기에 멜로디와 가사를 얹고, 이런저런 악기로 소리를 꾸며 곡을 완성한다는 것도 '음악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 뒤에 따라온 공부였다.
선후관계가 어딘가 한참 바뀐 듯한 독특한 이력은 오히려 그의 음악을 뿌리부터 단단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그에게 음악은 머리 위에 뭉게뭉게 떠오른 구름도,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찬란한 빛도 아니었다. '될 것 같은' 기분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되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안희수는 이성적인 판단하에 지금 눈앞에 자신이 실제로 쌓을 수 있는 구슬을 하나씩 찾아 차곡차곡 꿰어 나갔다. 친구에게 싼값에 건네받은 통기타를 최초의 악기로,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인디 가수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안희수의 노래가 하나씩 탄생했다. 그 가운데 스스로 '이 정도면 성장했다'고 느낀 곡들을 모은 게 바로 이 앨범 《안희수 노래 모음집》이다.
안희수의 첫 노래 모음집은 제목에 충실하다. 말 그대로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노래를 한 장에 모았다. 성장이 첫 기준이었으니 최근 곡이 대부분인 건 어쩌면 당연하다. 반면 선곡 순서는 모호하다. 노래 모음집에 처음 수록되는 신곡 '여정'이 문을 연 뒤, 이후는 제멋대로다. 발표한 시간순으로 나열한 것도 아니고, 비슷한 스타일을 모은 것도 아니다. 2022년 곡 '무채색이 돼버린 우리는' 다음으로 2024년 발표한 '그게 이상한가요?'가 붙고, 2023년 발표한 'Drawing'과 '네 어둠은 내가 먹어치울게'가 쭉 이어지다가는 '다정한 별빛 한 다발 품에 안고'로 다시 2022년으로 돌아가는 식이다.
어떤 기준으로 선곡한 걸까 고개가 갸웃해지는 사이 머릿속에서 숫자를 비우면 비로소 앨범이 그리고자 한 풍경이 선명해진다. 《안희수 노래 모음집》은 안희수라는 한 싱어송라이터가 거쳐온 시간이 그대로 기록된 나이테다. 나이테의 간격이 일정하지도, 함께 자란 나무들 사이 월등히 큰 덩치도 아니지만 한 줄씩 꾸준히, 정말이지 성실하게 성장한 자국이 곡마다 선명하다.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용기 내 세상에 내보낸 곡들, 이 정도면 썩 괜찮지 않나 조금 뿌듯했던 곡들, 나보다 더 나의 노래를 좋아한 사람들이 아껴준 곡들. 활동 8년 차, 이제는 어느 정도 자기 맛을 내게 된 노래들 사이로 통기타 하나로 무모하게 음악을 시작했던 초창기의 진심을 담은 미니멀한 포크 곡들이 문득 얼굴을 내민다. 두 장의 정규 앨범과 세 장의 미니 앨범, 이외에도 다수의 싱글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묵묵히 자신의 성장을 지켜보고. 인내하고, 다듬어 온 사람의 굵은 손가락 마디가 믿음직하다.
마지막 곡이 '자라날게'라는 건 그런 성정을 가진 안희수라는 음악가와 그의 노래 모음집을 단번에 설명해 주는 것 같아 괜스레 웃음이 나는 선택이다. 2023년 싱글로 한 번, 미니 앨범 《망가진 나침반을 들고》에서 한 번 더 대중에 선을 보인 노래는 당신 곁에서 쉼으로, 행복으로 자라나겠다며 반복해 다짐한다. 무너진 하늘과 궂은 날씨 속에서도 꿈쩍 없이 반복될 것만 같은, 오로지 한 방향만을 향해 지독하게 뻗어나가는 목소리에서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뻗어나갈 안희수가 만들 노래의 가지들을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자라는 게 아니다. 그가 그렇게 정했기 때문에, 전보다 나아지고 있기에 멈출 필요 없는 자라남이다. 이 앨범을 자신의 음악 인생에 있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자체적인 '중간 점검'이라고 말하는 안희수의 솔직한 고백에서마저도 그 흔들림 없는 무럭무럭의 힘이 느껴진다. 자신이 만든 음악을 꼭 닮은, 성실하고 다정한 강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