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살벌한 연인, 그 악행의 자서전
2009-02-09
영국은 신사의 나라, 펑크의 나라, 브릿팝의 나라, 민주주의의 나라, 여왕의 나라, 성공회의 나라, 그리고 어두운 흑마술의 나라이기도 하다. 블랙메탈의 발상지, 본토라고 부를 만한 노르웨이하고는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나름 이 곳도 우중충하고 음습한 어둠의 뭔가가 나름 도사리고 있긴 한 것이다. 그것들을 흡수하며 자신들의 음악을 쏟아냈던 이들이 바로 이들, 크래들 오브 필스였다. 잼 안 바른 빵처럼 퍽퍽하게 달리고 부수고 울부짖기만 했고, 사실 섬뜩한 냉기만이 느껴지기까지 했던 그쪽 사람들과 달리 이들이 하는 음악에는 언제나 끈적하고 따뜻한 피의 선정적인 내음이 충만했다. 처음부터 정통적인 블랙이라기보다 데스에 가까웠던 이들은, 이른바 삼대 걸작이라고 불리는 Dusk and Her Embrace, Vempire, Cruelty and the Beast 등의 시절에도 단순히 블랙 메탈이라고 부르기 미묘한 (이른바 골수분자들이 까는 식의 상업성의 문제를 떠나서) 느낌이 가득했다. 나중엔 블랙 메탈이 싫다는 발언까지 나왔는 것까지 감안해보면, 뭐랄까 구태의연한 수식어인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음악''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전작인 Thornography가 비난의 융단폭격을 맞았던 주된 이유였던 ''심포닉함의 멸종''과 ''익스트림으로서의 야만성 상실'' 등을 깨달았는지,(나름 그 앨범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쉬이 도전해선 안 될 짓이었다) 앨범 내기 전부터 과거의 Cruelty 앨범을 거론했던 밴드. 속 시원한 메탈 넘버 Shat Out of Hell로 호쾌하게 시작하는 본 앨범은 명작 Cruelty and the Beast가 그랬던 것처럼 역사적인 명성의 연쇄살인마를 주인공으로 하는 컨셉 앨범의 외양을 갖추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처음 장만했던 크래들의 앨범이 그 앨범이었던 만큼, 잊고 살던 크래들을 다시 접하게 해준 앨범이 또 다시 컨셉 앨범이라는 건 묘한 느낌을 안겨준다. 그러나 컨셉 면에서는 ''Cruelty 앨범의 남성적인 전환''이라는 말이 맞는 말일지도 몰라도, 아무래도 그 때의 그 느낌과는 다른 편이다. 밴드가 처해있는 상황도 다르고, 그 때의 그 멤버도 아니고, 목표로 삼은 음악성향도 다르니까 말이다.
사랑하는 잔 다르크를 이단 재판 끝에 화형으로 잃어버린 질 드 레, 그가 어떻게 악마로 다시 태어나고 어떻게 악행을 저질렀으며, 결국에 어떻게 비참하게 괴로운 끝을 맞이하며, 죽음의 순간에 맞은 빛에 대한 이야기. 어른을 위한 잔혹 동화라고 할 수 있을 이번 앨범은 여러모로 Metallica의 이번 앨범 Death Magnetic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앨범이든 그 앨범이든 사람들로 하여금, 오오, 과거로의 귀환이다 옛날로 돌아왔구나 정신 차렸구나 등의 환호를 듣기야 한다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메탈리카의 이번 앨범이 St. Anger의 방식을 버리지 않고 체내에 함유한 만큼, 크래들의 이번 앨범 또한 최근의 크래들의 변화된 방식을 완전 폐기하지는 않은 채 그대로 함유하고 있다. 이른바 ''수작''이라고 평가받는 앨범들이 흔히 그러하듯 현재 지금 이 시점에서 하고 있는 스타일을 가지고 과거의 유산을 올바르게 가공하고 수용하고 있다. Nymphetamine이나 Thornography의 긴 곡들이 정말 몸 뒤틀게 만드는 완성도를 가지고 사람 짜증나게 만들었던 데 반해, 이번 앨범에서는 8분이 넘는 대곡에서도 감격할 만큼의 완성도는 아니더라도 청자의 인정을 불러낼 만한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 또 익스트림이라는 뿌리와는 너무나 멀리 와버린 크래들이지마는, Shat Out of Hell 이나 Godspeed on the Devil''s Thunder에서의 유쾌하기까지 한 과격 드러밍은 이들이 완전히 흐려지는 것을 막고자 분투했다는 게 느껴져 흐뭇한 미소를 짓게 도와준다. 앞으로도 이런 모습, 더 발전시켜줬으면 합니다 여러분.
2009/02/09
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