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B와 데이브레이크, 아월과 설, 코토바와 정서주의 감성이 공존하는 패치워크. 유례를 찾기 힘든 다종다양의 컴필레이션이 나왔다. 이를 꿰어낸 것은 산울림이란 독창적인 코바늘이다. 군더더기 없는 선율로 오래전 빚어둔 고전의 향기가 신세기 작법을 만나 펼친 '신선한 노포' 같은 한 상 차림. 또 어디서 받아볼까.
2023년 9월 출항한 싱글 연작, 산울림 50주년 리메이크 프로젝트의 대장정이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 산울림의 베이시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김창훈이 주도한 이 기획은 거의 한 달에 한 곡꼴로 '격파하듯' 진행됐다. 어느덧 산울림이 데뷔 50주년을 맞는 해인 2027년이 내년으로 성큼 다가왔다.
현재진행형으로 달려가는 대형 기획 중, 꼭 가운데 토막의 열 곡을 모아 이번에 나온 [산울림 50주년 기념 정규앨범 Vol. 3]은 […Vol. 2]가 나온 지 근 1년여 만에 출현했다. 그간 싱글로 나왔던 스물한 번째 곡부터 서른 번째 곡까지, 열 곡을 모아 다시 담은 것이다.
여기 당도한 '제3집'의 스펙트럼은 여느 때처럼 광활하며 방대하다. 캡틴 김창훈의 지휘 아래 코토바의 매스 록(Math Rock)부터 메이트리의 아카펠라, YB의 하드록, 정서주의 트로트 크로스오버까지, 대중음악의 유니버스를 가로지르는 다채로운 장르가 우주쇼처럼 여기서 교차하며 폭발한다.
6분 53초에 달하는 역작으로 완성된 YB의 '흑석동'을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김창훈 솔로 4집에 실린 이 곡은 산울림의 뿌리가 된 동네,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그린 노래다. YB는 드롭 A 튜닝 7현 기타의 육중한 초저음 리프(Riff)에 윤도현의 절규까지, 건축하듯 클라이맥스까지 쌓아 올리고 내닫는다. 중장비를 총동원해 이 검은 돌의 마을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건축한다.
거칠고 육중한 YB의 포효 반대편에는 상큼한 셔벗과도 같은 악퉁의 '초야'와 메이트리의 '산할아버지'가 별일 아니라는 듯 도사린다. 이 이율배반적 공존의 세계가 바로 [산울림 50주년 기념 정규앨범 Vol. 3]의 영토다. 메이트리의 '산할아버지'는 앨범 중간에 툭 던져진 레몬 향 디저트 같다. 산뜻하고 상큼한 아카펠라는 원곡의 산미를 증폭해 한층 더 폭발시킨다. 금빛 전통 약과를 파스텔색 마카롱으로 재해석한 것 같은 자태다. 악퉁의 '초야'가 건네는 청량감도 만만치 않다. 1983년 김창완 1집에 실린 원곡을 청춘 영화의 도입부에 들어간 모던 포크 곡처럼 변환했다.
산울림의 발라드 4대 명곡에 들어가는 '회상'은 데이브레이크가 개건해 냈다. 동네의 골목길을 도심의 대로로 치환하되 고독의 채도는 더 올린 모양새다.
브로큰 발렌타인, 트랜스픽션, 코토바가 YB와 함께 열탕의 록을 끓여낸다면, 메이트리와 악퉁이 데이브레이크와 함께 청량한 냉탕을 담당한다. 이어서 아월과 설이 시크한 펑키함으로 그늘을 드리우면 정서주가 한국적 발라드로 아련한 안개를 마지막 길에 뿌리는 구성이다. 열 곡을 듣고 나면 돌밭이 발밑을 자극하는 특이한 둘레길을 걸은 듯하다. 기분 좋은 트레킹처럼 두뇌가 환기된다.
요즘 가요계에 리메이크 음원이 범람한다. 들여다보면 디저트 일색이다. 세기말, 세기초의 발라드나 팝 록이 재발굴되는 요즘 흐름에 기대어 간단한 리모델링에 바이럴 마케팅을 얹는 식으로 수익을 노린 기획이 천지다. 이런 물결 속에도 산울림 50주년 프로젝트는 편승 없이 오뚝하다. '돈이 되는 리메이크'보다 '뜻이 있는 리메이크'를 지향한다. 프로젝트 리더이자 전체 프로듀서로서 선곡은 물론이고, 리메이크 음악가와 커버 아티스트의 선정과 섭외까지 손수 해내고 있는 조향사 김창훈의 의지 때문이다. 좋은 음악, 신선한 음악을 낚기 위해 반세기 지난 지금도 새벽 조업을 나서는 그를 움직이는 것. 당의(糖衣)가 아니라 당위(當爲). 팔리는 음악을 포장하는 당의가 아닌, 좋은 예술을 지향하는 당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