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참 이상하다. 2005년, 모두가 지금의 것에 매달려 좀더 R&B화 되고 힙합화되고 모던록화 되는 병든 트랜드의 추종시대에 어떻게 이런 역모의 음악이 나올수 있는 건가. 변화의 샘인 신인의 음악이 육성 난망을 핑계로, 서바이벌 게임 승리를 목표로 오히려 주류의 추세에 자진 투신하는 이 전체주의적 시대에 어찌 앙상해져버린 언어인 '정통'을 되살리려 하는 것인가. 역모라 했지만 자연스런 결과물이 아닌, 의도적인 접근이라고 해도 가상하다. 이 시대 취향에의 밴드 왜건을 비켜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조용히 박수를 치고 싶다. 이상해서 반갑다.
생소한 이름인 원도연과 작곡자이자 프로듀서인 김영식은 다들 눈을 두지 않는, 아니 애써 회피하는 곳에 음악시선을 담금질했다. 그들은 아마도 로우 틴,하이 틴, 트웬티 섬씽과 같은 현 시장의 주인들을 섬기지 않기로 작정한 것 같다. 소회된 그 윗세대에 응원의 소리를 기대하는 것일까. 혼돈, 좌절, 일상에 비틀거리지만 생명이 있기에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를 묻힌 메시지부터가 우리 '젊은 기성세대'의 심상을 닮아있다.
음악의 축은 첫곡 '바닥'부터 확연하듯 록이다. 화성의 단순함이나 살짝 묻어놓은 노이즈는 약간의 모던한 기류와 함께 원도연의 앨범이 록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우렁차게 신고한다. 록의 반복어법에 충실하지만 곡은 발랄,서구닮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지금의 록 흐름에는 배반한다. 그의 음악 키워드는 바로 배반이다. 이것이 앨범 전체의 바닥을 훑고 같다.
통기타의 여운이 강한 '쯔르쯔'는 평범한 어쿠스틱 감성으로 일관하는 듯하지만 텐션 짙은 코드를 활용해 예상치 못한 질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신선함이 바로 이 예상으로 부터의 배반에서 나온다. 대체 쯔르쯔가 뭔지 모르지만 언어의 배치는 곡의 느낌과 상당히 잘 어울린다. 그것보다는 강도사 센 '행운이 날 기다려'와 '피곤한 애기'는 원도연 보이스의 얇은 두께와 김역식의 배반지향의 재미가 이곡들이 야생적 펑크일것이라는 장르의 부담을 지워버린다. 이것은 소비자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원도연은 안티 트렌드이지만 동시에 "와일드 사이드"는 걷지 않는다.
이 앨범의 빛나는 성과는 '다음 사랑'이다. 발라드 풍으로 시작되어 후반부 서브젝트를 향해 몰아쳐가며 두터워지는 악기들의 텍스트는 근래 솔로 로커에서 목격하지 못한 "록의 덩치'를 만들어 내는 한편, 멜로디의 절정을 창출하고 있다. 하지만 초반의 지루함과 원도연의 각지지 못한 보컬은 모처럼으 대중적인 면모를 축소시켜 아쉽다.
'마네킨'은 김영식의 스펙트럼이 광대함을 웅변하는 곡이다. 선율은 스코어적이나 리듬은 펑크 또는 힙합의 어감이 퍼져있다. 도무지 장르를 쉬 적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원도연 음악의 특수성이다. 후반부 곡들인 '누군가를 믿게 되는 건'과 '꼭 그래야 하는지'도 처음 듣기에는 라틴과 불루스의 냄새가 스멀거리지만 계통을 잡기가 어렵다.
미진함은 있다. 곡 구조는 탄탄하고 접근은 지금의 어떤 히트 작곡자 이상으로 창의적이지만 선율 감성은 확실히 덜 살가우며, 원도연의 보컬 음색은 분명하되 'Come On'에서 나타나듯, 곡 전체를 휘감는 지배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성숙을 기다릴 용의는 얼마든지 있다.
"원도연과 김영식"은 폐어가 되어가던 새로움을 부활해내고 있다. 이상한 커플이다. 그들은 음악이 추세의 노예가 될 수 없으며, 기본에 충실한 음악이 새롭다는 것을 은근히 일깨워주고 있다. 간만에 기분 좋은 역모를 본다. 진정한 신인의 음악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