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르크너를 사랑하게끔 해준 음반.
2007-03-21
게오르그 틴트너는 자신의 부르크너 녹음들이 다 시장에 나오기도 전에 자살을 했다. 말기 암으로 인해 썩어문드러지는 자신의 모습을 견딜수 없어서. 찢어지는 고통을 물리치고 마지막 젖먹던 힘을 다해 이 사람이 한 짓은 자신을 창문 밖으로 내던지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틴트너라는 이름이 생소하게 다가오겠지만, 이 분은 싸기로 유명한 앨범을 위해 녹음을 해서 말년에 재수가 좋게 뜬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틴트너는 부르크너의 제자가 지휘하는 합창단에서 부르크너의 미사들과 모테트를 부르기도 했으며, 부르노 발터 밑에서 부지휘자를 한 경험도 있다. 그러다가 2차대전이 임박해 올때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뉴질랜드로 피난을 가서 마치 이무기가 승천할 때를 연못 바닥에서 기다리듯이 닭농장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와중에 틴트너는 동네 아마츄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했는데, 1950년대 초반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자기 동네에서 축제가 열려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공연을 했었다. 때마침 호주 작곡가 알프레드 힐이 주지사와 함께 참석을 했었는데, 힐은 틴트너의 지휘에 너무 깊은 감명을 받아서 공연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 말을 했다:
"내 부인은 항상 세상에서 두다리로 걸어다니는 것 중에서 가장 우수꽝스러운 것은 바로 닭이라고 농담을 하곤 했는데, 이제보니 그보다 더 웃긴 놈들이 있더군요. 여기 주민들은 어떤 남자로 하여금 지휘를 하기보다는 닭농장을 하게끔 하니까 말입니다."
여기서 그 어떤 남자는 당연히 틴트너였고, 2년 뒤, 그는 힐의 추천으로 호주 국립 오페라 극장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이 되었다.
그 후로 호주와 캐나다에서 연주회를 많이 가지며 인정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러다가 뒤늦게 낙소스에게서 자기 생애 가장 위대한 업적이 될 부르크너 전집 녹음 제안을 받는다.
사실 처음에 오케스트라 이름들을 보고 약간 망설였다. 빈 필, 베를린 필, 필하모니아와 같은 위대한 오케스트라들의 녹음들을 놔두고 왜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의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어야하지?싶었다. 게다가 후르트뱅글러, 클렘페러, 반트, 첼리디바케와 같은 거장들이 버티고 있는데 아무리 틴트너가 잘났어봤자 이들을 뛰어넘지는 못할꺼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래서 나는 틴트너의 부르크너를 오랫동안 장바구니에만 담아두고 실제로 사지는 않았다. 그리고 대신 후르트뱅글러, 첼리디바케, 그리고 클렘페러의 부르크너를 사서 들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 그렇게 위대하다던 후르트뱅글러의 빈필 부르크너 7, 8번, 클렘페러의 부르크너 4, 6번, 첼리디바케의 3번... 뭔가 즈겨웠다. 부르크너의 음악자체에 하자가 있었던거 같았다. 비슷한 코드가 계속 반복되는 듯한 느낌을 떨쳐낼수가 없었고, 부르크너 비판쟁이들이 흔히 그러듯이 똑같은 교향곡을 9번 쓴거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친구 집에서 틴트너의 부르크너 8번을 봤다. 이 친구는 그냥 클래식 좀 들어볼까? 해서 나름대로 유명하고 무엇보다 값싼 음반을 찾다가 구매하게 된것이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빌려서 집에 가져갔다.
8번 교향곡하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암울하면서 즈겨운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이썼다. 첼리디바케는 8번이 교향악의 최고봉이라고 했는데 전혀 공감할수가 없었다..
틴트너도 그렇겠지 하면서 틀었다. 그러나 달랐다.
뭐랄까... 처음으로 나는 단순한 "음악"을 들었다. 첼리디바케나 푸르트뱅글러의 8번은 뭔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적인 경험을 하게끔 하려는거 같다고나 할까? 틴트너의 8번에서는 음악이 한층 더 "가볍게" 다가왔다. 절대 경솔하다는 소리가 아니다. 뭔가 더.. 승화가 더 잘됐다. 본좌가 내공이 덜 쌓여서 그런건가.. 어쨌든 틴트너의 8번을 듣는 순간 베토벤, 브람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들을 들으며 느꼈던 엄청난 "만족감"이 차올랐다.
나는 순간 반해서 나머지를 낱장으로 다 샀다. 나머지 연주들에서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첼리디바케의 3번은 시작은 무엇보다 좋았지만 그 뒤부터는 무한반복을 하는듯 했으면, 틴트너의 3번은 마치 음악적인 여정을 다녀온듯 했다.
아마 이런 것에는 틴트너의 phrasing이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다른 지휘자들은 대체로 부르크너의 음들을 영원히 지속되는 우주의 울림처럼 연주한다 (반트, 첼리디바케가 특히 심하다..). 반면이 틴트너는 자연스럽게, 호흡을 하듯이 지휘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따라서 긴 하모니의 지속이 많은 부르크너 교향곡들이 덜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안그래도 음 하나의 지속시간이 그 어떤 작곡가의 교향곡 보다 긴데, 그것을 더 길게 느낄 필요가 전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오케스트라들도 전혀 부족함이없다. 물론 뮌헨 필이나 베를린 필의 웅장한 음색이나 완벽한 기교는 아니지만, 충분히 지휘자의 해석에 충실하다.
절대 다른 지휘자들의 부르크너가 이상하다는게 아니다. 하지만 틴트너를 통해 접했던 교향곡들을 다른 지휘자의 연주로 듣자 더 만족감이 오히려 더 높았다. (단순히 익숙해져서 그럴수도 있지만 나는 내 부르크너 내공이 쌓여서 그렇다고 믿고 싶다..)
부르크너를 있는 그대로, 소박한(?) 음악으로 듣고 싶다면 이 세트를 구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더 열정적인, 영적인 경험을 하려면 첼리디바케, 반트, 클렘페러, 그리고 후르트뱅글러의 녹음들을 듣는 것을 권장하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이 세트가 부르크너 입문자에게는 최고의 세트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