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팝 스토리는 어디선가부터 시작된다. 어떤 것은 술집에서, 또 어떤 경우는 클럽에서 혹은 공연장의 열광적인 앞쪽 객석에서 잉태된다. 밴드 뮤(Mew)*에 있어 그 특별한 이야기는 세상의 끝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영화 속 세상의 끝 말이다. 학교에서 자연 파괴를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던 와중 서로 만나게 된 네 명의 소년 요나스 비예르(Jonas Bjerre), 보 마드센(Bo Madsen), 요한 볼레르트(Johan Wohlert), 그리고 실라스 그라에(Silas Graae)는 장차 장대하게 될 지구의 파멸 양상에 공히 관심을 보임으로써 우정을 쌓게 되었다. 정작 그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조금 치기어린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 관심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들의 유대는 깨어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그 치기어린 영상이 밴드 뮤를 만든 공신이 된 셈이었다.
2002년으로 테입을 빨리 앞으로 돌려보면, 뮤는 벌써 하늘을 날고 있다. “밴드를 완성하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는데, 처음 시작할 때는 우리가 뭘 하는 건지 제대로 파악도 안 된 상태였죠.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우리의 가장 큰 강점이라는 사실이 곧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요나스의 목소리는 그 하나하나가 음반에서 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깨질 듯 연약하고 말을 아끼는 타입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곡은 어떻게 연주하는지도 몰랐고 그래서 직접 우리 걸 만들어 하는 쪽을 택했죠. 시작하자마자 그 즉시 우리는 뭔가 실마리를 제대로 잡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의 음악을 듣고 반해버린 사람들 모두가 그런 느낌이었다. 뮤의 곡들에 둘러쳐진 장식은 다이너소 주니어(Dinosaur Jr.)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등 자신들이 좋아하던 영웅에 바치는 직접적인 트리뷰트임을 드러냈으나, 얼마 가지 않아 곧 뮤만의 독자적인 사운드로 재빨리 꽃을 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회용 팝과 아쿠아(Aqua)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던 자국 덴마크의 음반 업계 안에서, 음악적으로 그들과는 전혀 다른 뮤가 레코드 계약을 딸 기회는 거의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선수를 쳐서 자기네들 스스로 레이블 이블 오피스(Evil Office)를 만들어 음반을 발매할 채비를 갖추었다. 사실 이블 오피스를 만들면서 뮤는 단순히 자신들의 일을 손수 주관하겠다는 것 이상의 행동을 보인 것과 같았다. 요한은 그때의 기분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것은 덴마크 (음반) 업계가 실패했다고 선언하며 저항하여 일어선 것과 같았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제의만 받는다면 다른 누구와도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점이었지요.”
뮤가 가진 것과 같은 라이브 명성 - 로스킬드 페스티벌 출연을 비롯 다수의 서포트 및 헤드라이너 공연들을 통해 쌓인 - 이라면, 오래지 않아 메이저 에픽 레이블이 그 소문의 장본인을 픽업하기로 한 결정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리하여 2002년 9월에 발매된 첫 번째 싱글 'Am I Wry? No'는, 여타 밴드가 앨범 전체를 통해 보여줄 양보다도 더 많은 훌륭한 훅(hooks)에다 클래식 음악의 영역 외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종류의 전개 양상을 보여주는 주제 등, 뮤의 압도적인 내용물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요나스의 가사가 팝계의 유수 스토리텔러들의 그것과 다름 없다는 사실('Am I Wry? No'와 '156'은 실패한 인간관계라는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음악 그 자체가 가진 깊이와 힘은 가사와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게다가 각 곡의 핵심을 그림으로 그려 그 각각의 개성을 정성껏 장식하는 동시에 곡들에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부여하는 요나스가 직접 만든 단편 필름(그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덴마크의 비디오 필름랩 스튜디오에서 이걸 혼자 만들었다고)을 함께 무대 위에 올리는 뮤의 공연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이에 대해 “곡을 쓸 때마다 우리는 하나의 여행을 생각합니다”라고 요나스는 설명한다. “머리 안에만 존재하던 마음속의 영상과 마음속 풍경을 구체적으로 창조해내는 거지요. 우리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행을 하게 만들고 싶어요 - 곡을 다 들었을 즈음엔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 있을 수 있도록.”
무대 위에서나 음반에서나 공히 성공적인 다른 예라면 앤섬(anthem) 스타일의 'Snowbrigade'와 스트링이 가미된 애수띤 'She Came Home For Christmas', 그리고 스웨덴 출신의 훌륭한 여성 보컬리스트 스티나 노르덴스탐과의 듀엣이 들어있는 'Her Voice Is Beyond Her Years' 등이 포함된다. 뮤의 음악 보물 창고에서 시도되는 갖가지 좌회전과 참신한 시도들은 누구도 추측할 수 없는 전혀 예상 밖의 것들이다. 마드센은 말한다. “우리가 구사하는 사운드는 우리로선 꽤나 행운인 편이죠. 요나스의 보컬이 얹히기 전에조차 그 반주만 들어도 뮤의 곡이라는 게 표가 나니까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전개가 어떻게 될지는 또 알 수 없는 그런 곡들입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배운 대로만 연주합니다만 우리는 우리끼리 모여 연습한 일부 기타 연주를 빼놓고는 뭔가를 배워서 한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 같은 경우 블루스 솔로를 한번 배운 적이 있는데 그게 아직도 꿈에 나타난다니까요! 블루스가 가진 문제라면 다음 부분이 어떻게 진행될지 언제나 예측 가능하다는 겁니다. 누구라도 음악을 통해서 뭔가 놀랄 만한 것을 얻고자 하는 바램이 있는 거 아닌가요.”
'Am I Wry? No'와 시기상 적절한 타이틀이 붙여진 뮤의 두 번째 한정발매작 'She Came Home For Christmas' 이 두 곡은,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이 세상에 진정 정의라는 게 있다면 'She Came Home For Christmas'가 크리스마스 차트 넘버원을 차지했어야 했다는 데 일치된 의견을 이끌어내며 공히 훌륭한 반응을 얻었다. 뮤는 압도적이고 다이내믹한 라이브 공연을 통해 점점 높아가는 명성과 더불어 목하 좋은 성적을 거둔 두 장의 싱글과 함께 그 해를 마무리했다.
2003년 3월에는 앨범의 끝을 닫는 장장 9분여의 느리고 장엄한 곡이자 라이브 공연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곤 하는 'Comforting Sounds'가 그들의 첫 번째 상업 싱글로 소개되었다. 평단에서는 일찌감치 총아가 된 덕분에 그 싱글은 “판에 박힌 묘사 따위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아름다움의 엄청난 분출”이라는 극찬과 함께 NME의 ‘금주의 싱글'로 선정되었다. 런던의 메트로와 93 피트 이스트에서 가진 당시 공연에서는 입장을 기다리느라 주변 동네를 에워싸며 줄을 길게 늘어섰던 관객들이 공연 내내 뮤의 이름을 합창하며 환호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를 본 NME 기자는 공연평에 “뮤의 마음에 지금 무슨 생각이 교차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이거 하나는 알 수 있다 - 그 소리는 근사했다는 거.”
그리고 4월에 발표된 데뷔 앨범 [Frengers]에 대한 첫 반응은 보다시피 열광적인 것이었다. “경이로 가득차 있고”(Time Out), “찬란하며”(NME), 그리고 “조용하게 빛나는 작품이자 수없이 많은 텍스처가 교차하는 작은 걸작, 올해의 우승감”(Bang) 등등. 이렇듯 [Frengers]는 뮤에게 멋진 한 해를 선사하고 있다.*
* 앨범의 부클릿에 표기되어 있듯 frengers는 friends와 strangers의 의미가 공유된 자의적 조합어로서 뮤의 대표적 단어 코드로 활용되고 있음.
* 뮤(mew)는 고양이나 갈매기와 같은 동물의 울음소리를 표기한 영어 단어에서 따온 밴드명.
* 이 글은 2003년 앨범 발매 당시의 밴드 바이오그래피를 번역한 것으로, 현재 뮤는 [Saviors Of Jazzballet]라는 가제 아래 올해 말 발표를 목표로 2집 새 앨범을 제작중.
번역: 성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