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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under20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의 재발견2008-08-22
새로운 것이 올바른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은 그 평가의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번스타인은 참으로 많은 곡을 녹음했다. 그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 지휘자는 바로 카라얀이었다. 카라얀이 기본적인 관현악 레파토리와 함께 오페라에 비중을 두었던 반면 번스타인은 현대작품과 자신의 작품을 병행하였다. 번스타인의 기본 레파토리에 관한 녹음은 CBS시절과 DG시절로 양분되지 않나 생각한다. 그것이 번스타인의 의도였던 아니던 간에 두 그룹은 완전히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자의 녹음들 중에 말러를 제외하고(번스타인의 말러는 별로도 생각하는 것이 옳을듯하다) 대부분의 녹음들을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그 자체로서 하나의 완성품이면서도 다양한 실험의 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후자의 녹음들은 그러한 실험들이 실질적으로 발현된 시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DG에서의 번스타인의 녹음들은 기존의 다른 음반들과 차별화된 해석을 보이고 자신의 음반과는 더욱 차별화되어 있다. 하지만 전술하였다시피 이미 그 가능성은 CBS시절의 녹음에서의 실험들로 그 징조가 보여졌었다. DG시절의 충격적인 녹음중에서 난 차이코프스키를 정말 좋아한다. 번스타인이 차이코프스키를 DG에서 녹음할 무렵 카라얀의 음반도 시장에 있었고 무엇보다도 더 강력한 므라빈스키의 음반도 시장에 존재하였다. 극단적으로 두 사람의 음반이 시장을 양분하였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자신만의 미학적 관점을 보여준 카라얀과 그야말로 오리지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므라빈스키의 강력한 해석에서 더 이상의 가능성을 찾는다는 것은 이 곡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번스타인이 차이코프스키를 녹음하기 전에 언급한 두 지휘자의 음반을 들었는지 여부는 알수 없지만 그의 차이코프스키를 듣는 우리 입장에서는 두 거인의 발자취를 피해 절묘하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창조력과 과감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번에 재발매된 4,5,6번이 처음 발매될 때의 재킷은 나무와 빛으로 가득한 풍경이었다. 각 그림은 음반의 해석과 일치하였다.
4번은 5,6번에 눌려 잊혀지거나 4악장의 과격함만을 즐기기 위해 듣게 될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내재된 다양성과 음악적 에너지는 차이코프스키의 전 6곡의 어느 교향곡과 비교하여도 절대 밀리는 곡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 악장을 모두 들어야만 그 곡을 넓게 느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번스타인의 녹음은 4악장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4악장은 참으로 시원하고 통쾌하다. 물론 카라얀도 그러했고 므라빈스키도 그러했다. 하지만 아무도 번스타인처럼 행간에 호흡을 주면서 과격한 폭풍이 지나가는 순간 우리의 가슴에 많은 생각을 남겨주는 예리한 기술을 보여주진 못했다. 5번 4악장의 찬란한 피날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 안에서 삶의 모든 것을 읽는다. 그것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패배감 아니면 자살까지 유도할 정도의 극도의 우울증의 상태에서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한 강렬함의 극단적 대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 비슷한 부류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해나갈 수 있지만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비교하고 분석하여 명확한 대조를 만들어내는 일에는 미흡하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지고 명확한 대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양자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난 이러한 이유로 5번의 위대함을 인정한다. 또한 내가 생각하는 이 곡의 탄생의도를 가장 직접적이고 자극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번스타인의 음반이라고 생각한다.
6번 비창, 4,5,6 새 개의 녹음 중 가장 말이 많으며 논란의 소지가 많은 녹음이다. 논란의 핵심은 바로 4악장이다. 4악장은 누구의 음반을 듣더라도 일정량의 슬픔을 가슴에 심어준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슬픔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슬픔만을 위해 존재한다면 그것은 신파조가 되는 것이고 그것을 무언가로 발전시킨다면 승화 혹은 정화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그토록 수많은 6번 교향곡의 음반을 나누는 잣대가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번스타인의 4악장은 참으로 길다. 동급의 첼리비다케의 녹음만큼이나 그 물리적인 길이는 대단한 것이어서 음반을 사기전에 뒷면의 시간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다. 과감하게 물리적 시간을 늘이게 될 경우 발생하는 리스크는 집중력의 분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번스타인과 첼리비다케는 그러한 리스크를 극복할 집중력을 가졌었고 그들 자신들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그토록 도도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단순히 길다라는 것뿐이다. 첼리비다케는 거의 전 해석에서 행간의 의미를 두어왔기 때문에 자신의 해석 기준의 연장선상에서 비창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번스타인의 4악장은 가장 독자적이고 창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누가 이토록 긴 호흡속에 이렇게 많은 메시지를 넣을 수 있는 지휘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 수 있을까? 지독한 슬픔에 독한 술을 마시고 온몸의 수분이 없어질 만큼 눈물을 흘린 뒤에야 느낄 수 있는 정화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번스타인은 그것을 느끼고 있고 보여주었고 우리는 녹음이라는 유산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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